부정적인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면 노래를 부른다. 최신 k-pop에서부터 80년대 유행한 발라드까지 다양한 노래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노래는 치유의 힘을 갖는다. 마법과도 같다. 슬플 땐 슬프게, 기쁠 땐 기쁜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면 감정이 벅차오른다. 한 마리의 양을 모는 양치기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유적지를 찾아나선 탐사대원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는 노래의 위력은 대단하다.
노래를 한껏 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노래를 들어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따라 불러도 풀리기 때문에 집에 사람들이 없으면 최대한 적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편이다. 선조들이 진도 아리랑을 통해 한의 정서를 표출하고, 서편제와 같은 영상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의 혼을 강조했다면 내게 남은 건 바로 ‘귀여움’이다. 최대한 입을 오물거리고, 손발을 쫙쫙 펴 노래에 맞춰 율동을 추는 내 모습은 생각만 해도 익살스럽지만 찾아보면 귀여운 면이 조금은 있다. 이 독특한 귀여움으로 말미암아 노래를 부르고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이건 철저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근에 아이유의 노래와 권진아의 노래를 많이 듣는데, 그 둘은 모두 감성적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목소리에 담긴 감미로운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되어 가사와 한몸이 되어 공중을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유튜브의 댓글들을 읽어보니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도 많고, 괴로운 삶에 새로운 요소들을 충전 받은 느낌을 경험했다는 감상평도 있었다.
스포티파이나 멜론 뮤직으로 인해 원하는 노래를 언제든지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음악은 우리와 한결 더 가까워졌다. 카페를 가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길거리를 지나가도 가끔씩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며 홍대를 가면 버스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양상은 다를지라도 노래라는 하나의 본질 아래 묶여서 다양하게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그들의 개성을 뽐내 보이는 것이다. 좋은 문화의 일면이라 생각한다.
가끔은 노래를 부르는 재능이 있었다면, 정말 가수들의 목소리처럼 단아하고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며 짙은 호소력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 무대 한 중앙에서 내 노래를 뽐내며 무대를 좌지우지하는 장악력을 펼쳐보인다면 꽤 멋져 보일 것이다. 팝가수 비욘세, 아델과 같은 가수들은 수많은 인파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재능을 펼쳐 보였다. 사람은 제각기 하나의 재주는 받고 태어난다던데, 그들처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재능이란 것이 더욱더 위대해 보이기만 한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가수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 하나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싶다. 그리고 내 노래 실력을 동원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싶다. 분명 옛날 옛적에는 샤먼과 같은 무당들이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들을 치유하지 않았나 싶다. 마법은 세계각지를 막론한다. 노래라는 마법으로 인종과 편견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묶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가 될 것이다.
치유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서 존재한다. 노래가 있기에 우리가 편히 쉴 수 있으며, 한적한 자유를 누릴 수도 있다. 그러니 노래를 듣고, 따라 불러보자. 공터에 나가서 밝은 대낮에 태양을 보며 노래를 불러보는 경험은 상당히 색다른 느낌을 선사해줄 것이다. 물론 수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단정하게 나가야 하는 건 자명하다. 노래가 영원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이상 노래를 귀엽게 부르는 글쓴이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