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에 대한 두 가지 태도

by 이동훈

사람이 짜증을 느낀다는 것은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다는 걸 나타낸다. 가령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육아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식과 배우자와의 관계 때문에 그럴 수도,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수험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가능성은 다양하다.

짜증을 느끼면 우리는 행동을 취하거나 행동을 취하질 않는다. 행동을 취한다는 건 짜증이 나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은 그냥 냅둔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 좋은 것인지, 또 옳은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둘 다 각자만의 장단점이 존재한다.

짜증 나는 걸 구체적으로 나서서 고치는 사람들은 행동력이 높다. 그리고 진취적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내 앞에 놓여있는 불의를 바로잡거나 불편 사항들을 최대한 수정해 현재의 효율을 높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행동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상황을 지켜보거나 유유히 냅두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let it be의 정신처럼, 흘러갈 건 흘러갈 대로, 지나갈 것은 지나갈 대로 둠으로써 상황을 보다 유연하게 지켜보려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후자에 가깝다. 사실 예전에는 전자에 가까웠다. 짜증 나는 사항이 있으면 그걸 바로잡으려 노력했고, 내 의지로 대부분 가능한 일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점차 들다보니 꼭 모든 것이 나의 통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짜증 난다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불편한 사항들을 전부 고치는 건 무리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낳을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 나에게 짜증이 나게 군다면 받아침으로써 더이상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바꿔볼 수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 자유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즉, 오롯이 내 뜻만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면 그건 그 사람 자유이고, 내가 그 사람에게 가서 왜 나를 싫어하냐고, 나를 앞으로 좋아해주면 안되겠냐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의 뜻에 맞게끔 행동한다. 어떤 사람은 a라는 방식으로, 또 어떤 사람은 b라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제각기 자신의 스타일대로 행동하는 것이기에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명분도 있다. 물론 심각한 피해를 준다거나 엄청난 스트레스를 야기한다면 제재가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유유히 지나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때로 바로잡으려고 했다가 큰 화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아서 극단적으로 화를 표출해서 되려 다치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니 상황을 잘 파악하고, 사람을 잘 보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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