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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Dec 08. 2020

퇴직 후 이모저모 - 8

나이 든다는 것

그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다.

딱히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밥만 먹으면 저절로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살다 보니, 아니 살아지다 보니 어느 순간 여기에 와 있다.

숨만 붙어 있어 주면 먹는 게 나이니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또 있으랴.

그런데 그 생각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그리 단순하지 않더라는 거지.

나이라는 게 꽤나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꾸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는가 보다.

나 역시 나이 먹으면 이래야 한다는 기대치의 묵시적 기준선을 설정해 놓고 있다.

그리고는 지금 나는 기준선 아래에 있다며 대체 지금껏 뭐했느냐고 꾸짖는다.

아래에 있으면 뭐가 어때서?라고 습관적으로 방어해보지만 뻔한 통수다.


사실 아래에 있으면 사는 게 불편하긴 하더라.

다른 사람의 관심끌려고 애쓰거나, 주변의 진실없는 입발린 말을 누리려 애써야 한다는 거지.

굳이 그것 말고도 현실적으로 아쉬운 것도 많고, 속된 표현으로 가오가 안 서는 것도 싫더라.

직장에 있을 때도 위로는 누군가가 있었고, 퇴직하고 나와서 이것저것 한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거기엔 항상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높은 분들이 계시더라는 거지.

어디나 기회는 많지 않고 그 적은 기회조차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고 높은 분이 먼저 가져가더라.

물론 당연한 거야.

성과도 내지 못하는 신참들 챙긴답시고 얼마 안 되는 기회를 주다 보면 회사는 언제 성장하겠어?

그러니 결국, 그 바닥에 먼저 와서 시간을 쌓아 둔 사람이 우선인 게 당연한 이치인 것이고, 같은 대접을 받으려면 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쌓으면서 간격을 좁히는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투덜거림이 편하게 날로 먹으려는 수작인 거고, 그저 시기나 질투에 불과한 거지.

근데 사실 그게 쉽나.


사실 이리될 줄 몰랐다.

나 정도면 저절로 기준선 위에, 아주 한참 위에 있을 줄 알았다.

저절로 나이 먹는 것처럼 저절로 그 위에...

ㅋㅋㅋ

내가 나를 비웃고 싶다.

아주 신랄하게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고 싶다.

그런데 그럼 뭐하랴.

손가락질하는 놈이나 받는 놈이나 같은 놈이고, 손가락질하지 않아도 충분히 괴로운 것을...


이제야 쉽게 나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이 나이엔 어디쯤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건 '공짜'라는 말처럼 무엇이든 쉬운 일에는 함정이 있다.

나이 먹는 게 제일 쉬워서일까?

그래서 나이 먹는 건 그 값을 하고 기준선이 있는지 모른다.

미리 알면 좋았겠지만 난들 알았나, 매해 받아 드는 나이는 늘 처음 접하는 숫자인데...

아차 싶어서 다시 돌아가려 해도 뒤는 꽉 막힌 채 길은 앞으로만 나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난 길이 매끄러울까.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이다.

쓰레기 더미가 잔뜩 쌓여 길을 막아서고 있다.

그건 젊은 날 귀찮다고 미루고, 힘들다고 피한 숙제들이다.

피하면 사라질 줄 알았고, 미루면 천년만년 계속 미뤄질 줄 알았던 거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진짜 '이런 젠장'이다.


팔을 뒤로 돌리면 저절로 '어이쿠' 소리가 날 만큼 아프고,

무릎을 구부릴 때마다 '찌지직'하며 무릎 속의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는 '왜 전기 콘센트는 죄다 바닥에 낮게 붙어 있냐'라고 투덜거리게 하고,

누가 내 귀에 사이렌을 틀어 놓았는지 이 놈의 이명 탓에 24시간 내내 '브레인 포그'에 잠겨 있는,

내 몸이지만 내 말을 듣지 않는,

내 머리지만 딱히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무언가 생각나서 메모하려 핸드폰을 켜는 순간 '뭐였더라?' 하며 머릴 쥐어뜯는,

그런 꼬라지가 되어서야 쓰레기를 치우겠다고 나서니 하품부터 나온다.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뭐 그래도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가고자 치우려 하니 그나마 가상한 건지도...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거나, 알면서도 마음을 굳게 먹지 못한 것이 모두 내 탓이란다.

나이 먹어 어르신이 되거나, 아니면 영감탱이가 되는 것도 다 내 탓이란다.

누구 탓이면 어쩌랴.

내 탓이 아니라, 유전자 탓이고 부모 탓이고 세상 탓이라고 투덜거린다고 누가 보상해 줄 것도 아닌 걸.

그리 된 이유를 밝힌 들 무슨 소용이랴.

결과로써의 현재를 수용하느냐가 문제인 거지.

이대로도 좋으면 다행이고, 싫지만 이대로 있겠다 해도 할 수 없는 거지.

뒤늦게 밀린 숙제 해보겠다고 부지런 떠는 것도 어쩌겠는가.

그 또한 제 할 나름이지.

보잘것없는 몸뚱아리 애지중지 아껴봐야 죽으면 썩어 없어질 건데 뭐 그리 조심스러운지 모를 일이다.

내세울 가오는 또 뭐가 있다고 아쉬운 소리 하나 못하고 챙겨주기만 기다려야 하는지도 참 모를 일이다.


매번 날 다그치는 내면의 꾸지람에 지쳐 피하고 싶지만,

피한다고 사라질 게 아니라서 차라리 버둥대기라도 하니 그것에라도 감사해야 할까.

하긴 그조차 없으면 X구멍으로 나이 처 드셨냐는 소리까지 들을지 모른다.


저절로 나이 먹을 5년, 10년 후엔 또 무엇으로 내가 나를 꾸짖을까 궁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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