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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Sep 10. 2020

퇴직 후 이모저모 - 7

시간은 기회

퇴직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내게 아내는 혼자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예전부터 가고 싶다고 입에 달고 살았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오라 했다.

혼자 가서 그동안 짊어져 온 어깨의 짐을 내려 놓고 오라고 했다.

50여 년 동안 머리와 가슴 구석구석마다 덕지덕지 낀 삶의 찌꺼기들을 비워오라 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티켓팅과 코스, 준비물 등을 알아 보았다.

'스페인 하숙'이라는 이름으로 TV 프로에 나오기 전부터 국내에도 꽤나 알려진 곳이라 관련된 정보는 차고 넘쳐서 며칠 검색한 것만으로도 코스와 비용, 제반 문제점 등에 대해 가이드 수준이 된 듯했다.

그래서 잘 다녀 왔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가지 않고 있다.(금년엔 코로나 때문에 생각도 못하지만)

'졸속이 지완보다 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나는 저지르지 못했다.

매사에 지겹도록 비용과 시간, 노력에 대한 가성비를 따지는 습성에 따라 계산기만 두드리다 그리 된 거다.

적어도 300~400만원의 비용과 30여 일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순례길.(코스는 열흘 짜리부터 40일 정도까지 더 짧거나 길게 선택할 수 있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그 길을 걷는 게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거라 그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내가 지닌 삶의 때가 겨우 그 정도로 비워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더 컸다.

수십 년 된 허름한 고깃집의 환풍기 기름때처럼 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끈적끈적 들러 붙어 수시로 나를 괴롭히는 시간의 때들이 겨우 30여 일, 800km의 길을 걸으며 발바닥에 잡히는 물집 몇 개와 허벅지 통증 따위와 교환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혼자 길을 걷다 혹여 강도라도 만나면, 심장에 무리가 가서 멈추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들었다. 그래서 설령 머리는 비워지더라도 건강을 해치고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건강만 해치고 들러붙은 때도 떼어 내지 못하면 투자된 시간과 비용은 어쩌나 하며 열심히 쟀다.

그렇게 재다가 아직 가지 못했다. 이젠 가려 해도 갈 수 없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나에게 없는 능력 중 하나가 미래를 내다 보는 것이다.

뭐든지 지나고 나서야 안다.

그런 나를 보고 만든 유명한 속담이 있지 않은가?

"X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는...

지나고 나서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은 다 속절없는 말이다.

어줍잖게 아는 척하는 말일 뿐이다.

불확실한 선택의 순간에 어느 것을 선택하고 성공한(그 건에 한해서) 사람들이 '운이 좋았던 거다.'라는 말은 겸손의 말이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다 안다면 점장이하는 게 맞다.

선택하고 나서 그것이 성공에 이르도록 부단히 노력한 수고로움의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도 아니다.

죽어라 노력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서, 내 능력 밖의 요소들로 인해 실패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다.

노력하지 않아서 실패한 케이스는 논외로 하자.

운이 좋은지 나쁜지 확인할 기회조차 갖지 않은 거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도 어찌 매번 죽어라 노력하기만 하거나, 늘 땡땡이만 치겠는가.

때때로 노력한 일이 타이밍에 맞지 않았거나, 타이밍에 맞는 일인지 모르고 땡땡이를 치는 엇갈린 행위들이 반복되었겠지.

직장을 나오고 나서야 직장이 무언지 보였다.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그게 어떤 가치인지 안다는 건 내 탓이긴 하지만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지나봐야 알게 되는 어리석음은 대체 왜 그런지 자꾸 반복된다.

어찌하면 겪기 전에 그것의 가치를 알 것인가.

그것처럼 상황이 바뀌고 나서야 실체를 알 수 있는 게 또 있다.

내가 누군지에 대한 것이다.

퇴직하고 나오니까 그제야 내가 보였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 살아 오면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했고 그걸 어떻게 행동에 옮겼는지, 옮기지 않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실 굳이 퇴직까지 하지 않고서도 어느 일부분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퇴직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당시의 내 모습이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시그널이었는데 그걸 무시했다.

내 현실을 냉철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보완을 했어야 했다.

이성이 감정을 이기도록 했어야 했다.

퇴직할 상황이 아님을 알고 나중을 위해서 준비를 했어야 했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덜 후회스럽도록.

모자란 판단력이 안타깝다.

이 모든 걸 퇴직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게 내 선택으로 받은 유일한 선물이다. 지금까지는.


기회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 사라져간다.

사람도, 시간도, 기회도 유한한 세상이다.

그 어쩔 수 없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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