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스르는 몸의 움직임

고무줄놀이와 발레

by 지혜로운 사자

어느덧 쉰을 넘긴 나이,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몸에 붙는 레오타드를 입고 타이즈를 신은 채, 나는 40년 전 어느 오후의 골목길로 소환된다.

그 시절 우리에겐 거창한 장난감이 필요 없었다. 주머니 속 꼬깃꼬깃 접어둔 검정 고무줄 하나면 충분했다. 전봇대와 가로등 사이에 줄을 걸어두고, 혹은 친구 두 명이 양끝에서 줄을 잡아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무용수가 되었다. "장난감 기차~" 동요 가사에 맞춰 발등으로 줄을 낚아채고, 무릎 높이에서 어깨 높이로, 다시 머리 위 '만세' 높이까지 올라가는 줄을 보며 우리는 기어코 그 허들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중력을 거스르는 유전자의 기억

3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이어오며,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름 모를 갈증이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춤추고 싶은 욕구는 깊숙이 눌러두어야 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시작한 50대의 취미 발레. 클래식 선율에 맞춰 발을 뻗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몸은 이미 이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레의 가장 기본이 되는 플리에(Plié)는 고무줄을 넘기 전 무릎을 굽히던 그 탄력이었고, 공중으로 발을 높이 차는 바트망 (Battement)은 어깨 높이의 줄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도약하던 그 간절함이었다. 발레리나가 발끝으로 서는 동작은, 줄에 걸리지 않으려 까치발을 들고 균형을 잡던 소녀의 뒷모습과 닮아 있었다.

최근 한국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공중에 떠 있는 듯한(Ballon)' 경이로운 도약을 선보이며 찬사를 받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에겐 어린 시절부터 중력을 거슬러 오르던 '도약의 DNA'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찾은 골목길, 매트 위의 우정

신기하게도 발레 스튜디오는 그때의 골목길과 닮아 있다. 7,80년대 골목길에서 검정 고무줄을 사이에 두고 까르르 웃던 친구들 대신, 지금 내 곁에는 매트와 바(Bar)를 공유하며 땀 흘리는 '발레 메이트'들이 있다.

순서를 외우지 못해 서로 눈치껏 동작을 따라 하고, 뜻대로 펴지지 않는 무릎을 보며 함께 헛웃음을 터뜨린다. 중년의 우리가 센터에 모여 함께 리듬을 탈 때면, 그것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의 균형을 함께 맞춰가는 고귀한 의식이 된다. 줄을 잡아주던 친구가 있어야 내가 뛰어오를 수 있었듯, 옆에서 묵묵히 바를 잡고 서 있는 동료들의 존재가 나를 다시 춤추게 한다.


멈추지 않는 무대

고무줄놀이가 끝나면 흙먼지를 털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50대에 다시 시작한 나의 '놀이'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고무줄은 내 발목에 걸려 있지 않다. 대신 내 마음속 가장 높은 곳에 걸려 나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더 높이, 더 가볍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오늘도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40년 전 골목길을 누비던 그 단단한 종아리 근육이 아직 내 안에 살아있다고. 우리는 여전히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의 고무줄을 멋지게 넘어서는 중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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