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꽃 선물
나는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주간에는 새벽배송으로 식료품과 함께 꽃을 배달시킨다. 생각해 보니 아마도 코로나 이후에 생긴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 나의 공간이 살아있는 아름다움과 향기로 가득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내가 꽃을 좋아하니 남편도 아이들도 무슨 일이 있으면 꽃을 사 온다.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데 이만한 가성비 있는 선물이 없으리라.
남편과 25년을 함께 살았고 연애기간까지 합치면 26년이 넘어간다. 그 기간 동안 남편에게 받았던 많은 선물들 중 값비싼 명품 가방이나 작고 반짝이는 보석들도 있었지만 받는 순간뿐이었고 그 기쁨과 행복감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임을 인정한다면 비싸고 귀한 선물보다는 작고 소박해도 자주 주는 선물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무슨 무슨 기념일에 예상되는 시나리오대로 주고받는 선물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그리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찰한 후 준비한 선물을 받으면 행복감은 몇 배로 증폭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외적으로 축하할 일들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생일, 결혼기념일을 제외하면 딱히 축하할 일들이 생기지도 않고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일들이 일상을 채우다 보니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설렘도 드물어졌다.
얼마 전 남편이 퇴근길에 꽃을 사 왔다. 오랜만에 꽃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웬 꽃?'하고 물으니 '그냥'이란다. 나는 남편의 무심한 듯한 '그냥'을 좋아한다. 말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냥'에는 나를 향한 마음과 본인을 위한 마음이 모두 공존했으리라. 나를 웃게 함으로써 자신의 고단함도 씻어내고 싶었을 그 마음이. 그날은 아마도 남편의 마음에 서운한, 혹은 허전한 일이 있었으리라, 밖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꼬치꼬치 물어보지는 않지만 아마도 주는 기쁨으로 남편의 마음도 따뜻해졌으리라. 그래서 꽃 한 다발로 남편과 나는 모두 행복해졌다. 우리 부부에게는 이만한 가성비 좋은 선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열흘 후 남편은 또 꽃을 사 왔다. 이번에는 다른 색감과 다른 품종의 꽃이었다. 지난번 꽃다발보다 더 싱싱해서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는 꽃다발이다. 이번에도 꽃 선물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또 '그냥'이었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남편은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걸, 그리고 내가 행복하면 남편도 행복하다는 걸. 좋은 짝을 만나서 친구처럼 늙어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을수록,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클수록 더 웃을 일이 많아졌다. 행복한 겨울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