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일어섰다.

발레가 내게 가르쳐 준 것

by 지혜로운 사자

퇴사 후, 나는 매일 걸었다.


집 앞 산을 오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어느 날은 만 보, 어느 날은 이만 보. 아침저녁으로 걷는 것도 모자라 낮에는 집 앞 수영장에서 아쿠아줌바 수업을 들었다. 평균 연령이 예순을 훌쩍 넘는 클래스에서 나는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했다. 어르신들의 열정적인 춤사위가 수영장 물을 가르는 모습에서 묘한 자극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금세 흥미를 잃었다.


반복되는 동작이 몸에 익을수록 머릿속은 다시 바빠졌다.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다. 좀 더 도전적인, 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일깨울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부터 마음 한켠에 품어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춤이었다.

고등학교 무용 수업에서 왈츠를 처음 배웠을 때의 그 벅찬 기쁨이 잊히지 않았다. 코로나 직전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토요일 아침 발레 수업을 석 달간 들어보기도 했다. 은퇴하면 라틴댄스를 꼭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도 오랫동안 품어왔다.


그렇다고 내가 춤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음악에 몸을 맡기는 자유로운 움직임은 영 서툴렀다. 내가 춤 비슷한 것이라도 시도하면 가족들은 코미디 프로를 보듯 배를 잡고 웃어댔다. 팔다리가 제각각 따로 노는 내 모습이 나조차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국적 회사를 다니며 숱하게 참석했던 갈라 디너의 화려한 무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타올랐다. 파티가 끝나고 일주일쯤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에 묻혀 잊혔다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를 이십 년 넘게 반복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준비를 하며 분주하게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발레 학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그 욕구가 다시 수면 위로 툭 튀어 올랐다.


처음 등록한 학원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수강생 대다수가 젊은 층이었다. 마침 시간이 난 친구를 설득해 함께 등록했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원장도 나이 든 우리를 내켜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뻣뻣해서 펴지지 않는 다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동작을 따라하지 못하면 답답해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자꾸만 의기소침해졌다.


두 달쯤 다니다 그만둘까 고민할 무렵,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 성인 발레로 유명한 학원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40대 중후반의 원장님이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중년 여성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분의 환대와 따뜻한 응원에 나는 본격적으로 발레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때는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이전 학원과는 달리 정통 발레에 충실한 커리큘럼이었다. 첫 수업, 가만히 서서 몸을 똑바로 세우는 것조차 내게는 큰 도전이었다.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일했던 몸은 뻣뻣하기 그지없었고, 특히 허리 라인이 무너져 있었다. 복근에 힘이 없어 잠시도 꼿꼿하게 서 있기가 어려웠다.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마다 두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후들거렸다.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발레 용어는 들어도 돌아서면 잊혔고, 결국 옆 사람을 곁눈질하며 버벅대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수록 더 하고 싶어졌다.


결코 쉽지 않아서 오히려 욕심이 났다. 우아한 동작 이면에 극도의 근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무용수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졌다. 집에서는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발레 용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가던 스튜디오를 세 번, 네 번으로 늘려 나갔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음악이었다.


매트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도, 바(bar)를 잡고 기본 동작을 익힐 때도, 홀 중앙에서 춤을 배울 때도 클래식 선율이 늘 곁에 흘렀다.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퇴사 후 처음으로 머릿속이 고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발레와 사랑에 빠졌다.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퇴사가 나에게 이런 선물을 주었구나.


클래스 친구들도 비슷한 연배였다.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부터 열 살쯤 어린 동생까지 나이 차는 있었지만, 발레라는 공통의 언어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퇴사 후 처음으로 생긴 새로운 인연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서툰 동작을 응원하며 함께 나아갔다.


정수리를 하늘 위로 끌어올리듯 척추를 세우는 풀업(Pull-up) 동작이 반복될수록, 무너져 있던 나의 자존감도 조금씩 일어서기 시작했다.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게 정말 필요했다고, 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것은 내 삶의 분명한 터닝포인트였다.


다음 회에는 MBA 첫 학기 전부 A+를 받은 이야기를 씁니다.




이전 05화멈춰 선 자리에서 다시 학생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