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빠른 편인데 그날은 따가운 햇살에 베어 나오는 땀을 바람으로 식히면서 조금 천천히 걸었다. 하늘이 맑고 파랗네, 정말 예쁘네 하면서.
올봄에 개관해서 부지도 건물도 깨끗한 큼직한 도서관에 다다르자 애들 웃는 소리가 들린다.
1층엔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많은 것이 가족이 많구나 싶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처럼 책이 많은 곳은 책 냄새가 진하다. 이곳도 시간이 지나면 종이와 잉크 냄새, 살금살금 걷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순간 소리를 크게 내고선 민망해하는 표정들이 가득 찰 거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공기부터 도서관에 있는 모든 것 이 좋다.
어릴 때 나와 내 동생은 엄마 직장 근처에 있는 문고에서 책을 뒤적거리며 엄마 근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왜 엄마를 기다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그 문고에서 보냈던 시간이 좋았나 보다.
자라면서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는 주로 도서관에 갔었다. 책이 가득 꽂힌 커다란 책장 사이에 주저앉아서 이런저런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현실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 냄새,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있자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곳에 가득한 책들이 날 보호해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를 받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도서관이 그런 곳이다. 눈을 감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조용한 곳. 하지만 혼자가 아닌 곳. 현실이 힘겨울 때 책이라는 다른 세계로 도망칠 수 있는 곳.
살면서 문득 혼자라는 게 무섭고 외로워질 때 도서관은 나의 연인이 되어준다.
이름 모를 타인들을 지나쳐 한쪽 구석의 삐걱거리는 책장에 기대 주저앉는다. 등에 닿는 책장의 단단한 느낌, 자박자박 발소리, 소곤거리는 목소리, 사람들의 체온으로 훈훈해진 공기에 둘러싸이면 뭐랄까 조금 안도감이 든다.
한동안 그렇게 있는다.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은 곳에서 찬찬히 마음을 다독인다.
그래도 서글픈 마음이 달래지지 않으면 이어폰을 꽂고 박효신을 소환.
노래를 들으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나지만 어쩔 수 없다. 도서관만으로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다는 건 진짜 사람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노래가 그렇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박효신은 날 감정의 저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기어코 울게 만든다. 그렇게 뚝뚝 눈물을 떨구며 깊게 가라앉았다가 올라온다. 코가 시큰하고 눈도 좀 부어야 앉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집에 갈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