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적당한 박선생 Oct 11. 2020

우리 집~에서 가장 못생긴 사람은?

답은 정해져 있지만

추석이 지났다.

이번 추석은 둘째 동생이 결혼하고 맞는 첫 명절이었다.

아직 낯설기도 한 동생 남편의 존재로 조금은 들뜨고 신선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조용하고 편안한 일상.

엄마 아빠와 과년한 딸이 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한다. 정확히는 대화라기 보다는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그것인데, 둘째 사위를 칭찬하다가 갑자기 아빠가 엄마를 칭송하고, 예수님의 행적을 기리고 서기와 단기를 계산하는 방법이 뭐냐는 화제로 흘러가는 것이다. 뒤죽박죽 맥락이 없는 것 같은데 주고받고가 되는 것은 함께 산 시간의 힘인까.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의 관계성에 대해 나 같은 쪼렙은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대화”라는 것에 한정 지어 보면 꽤 재미있다. 부모님과 함께 산지 1년 정도 지나면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식구들이나 우리네의 삶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엄마의 지분이, 검색하면 나올법한 지식적인 면에서는 아빠의 지분이 많았다.


엄마는 "긍정"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지극히 올바른 얘기뼈에 새겨도 무방할 정도다. 엄마 말대로만 하면 건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얘기의 흐름이 뭔가 엉성할 때도 있지만 엄마는 당신 삶에서 실천으로 말하는 분이라 맥락이 좀 흐트러져도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아빠는 6하 원칙, 기승전결로 말하고 생각한다. 정말 똑똑하다.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얘기를 듣다가도 디테일한 부분,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언급될법한 대목에서 치고 나와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역사, 음악, 종교 등 아는 분야도 넓어서 알쓸신잡의 유시민 같은 느낌이다. 그는 지식으로 승부를 보는 사람이다. 본인이 아는 것을 뽐내기 좋아다.




아빠는 아는 게 많은 만큼 지적 호기심이 대단해서 탐구하는 걸 좋아하고 식구들에게 퀴즈 내기를 즐겨한다. 재주 많은 사람이 그런 면을 표출하고 싶어 하는 건 인지상정인 것일까.


그가 지식과 논리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먹잇감을 노리는 매가 연상된다. 열렬히 얘기하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주 신이 나셨구나”다.

그런데 혼자만 재밌기보다는 청중과 함께 하고 싶어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얘기하다 말고 식구들에게 “그럼 ~이런 건 뭐라고 하지?”하고 꼭 물어본다. 퀴즈인 것이다. 우리가 답을 못하면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지? 하지만 내가 알려주지” 하는 뉘앙스로 자문자답하고, 간혹 정답을 말하면 어쭈? 하는 놀라움과 흐뭇함이 반쯤 섞인 표정으로 탁자를 3번 노크한다. 딩동댕, 정답이라는 뜻이다.


아빠의 이런 대화방식 재밌기도 하지만 꽤 성가시고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

나의 무를 일깨우는 것 같아 좀 창피하기도 하고, 알려주려면 그냥 알려주지 꼭 질문을 하는 것이 잘난 체하는 것 같아 얄미웠기 때문이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뭘.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빠도 잘 모르잖아?" 라면서 아빠 얘기는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려는 시도도 여러 번.  

그런데 요즘은 내가 변해서인지, 아빠가 변해서인지 아빠의 그 "뽐내기"가 예전처럼 고깝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꽤 합리적이고 새로운 시각이기도 해서 런 건 들을 만 하군, 할 때도 있다.


언제부터일까?

아빠 얘기에 이렇게 순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게.

아마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아빠가 그렇게 이상한 어른이 아니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 쌓이고, 사람이 나이 든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라는 사람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나이 든다는 것"을 조금은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부터.


아빠를 부드러운 눈길로 보니 그의 얘기에 불필요한 해석이나 오해를 달지 않게 되는 효과가 있다. 덮어놓고 미간을 찌푸리던 때 있었는데 이런 온화한 반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타인을 보는 눈길과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싶고, 요만큼은 성숙해진 내가 기특하다.

그래도 엄마 없이 아빠랑만 단 둘이 있는 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아빠는 아주 냉정하고 단호하지만, 익살스러울 때도 있어서 한 줄로 정의하기 어렵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원망스러웠던 적도, 툭 던지는 농담에 웃었던 적도 많았지만 공통적인 건 목소리가 크다는 것. 아빠가 그 우렁찬 목소리로 혼낼 때는 정말이지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이렇게 복합적이고 다양한 모습의 아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다정할 때의 아빠와 무서울 때의 아빠의 간극이 컸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아빠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에 눈치를 민감하게 키워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무섭고 엄한 아빠를 더 부각해서 그런 모습이 전부인 것 마냥 인식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운 아빠도 여러 모습 중 일부분이구나, 하는데까지 왔다.


어릴 때 명절이면 시골로 귀성하는 차 안에서 아빠는 종종 “우리 집~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은?”이라는 퀴즈를 내고는 했는데, 우리 삼 남매는 그걸 맞추려고 번쩍번쩍 기를 쓰고 팔을 들었다. 제일 못생긴 사람은? 제일 잘 먹는 사람은? 아무튼 "00인 사람"에는 출제자인 아빠의 주관적 인식이 다분히 섞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시골 가는 지루한 차 안에서 우리는 퀴즈를 맞추며 즐거웠고, 그런 우리를 보며 아빠는 더 좋아했을 것이다. 그냥 퀴즈가 아니라 자식들의 심심함을 달래주려는 아빠의 다정함 아니었을까.


그뿐인가.

방학 때면 만화책을 빌려보라고 만원씩 손에 쥐어주거나, 놀이동산에 데려가 주던 것도, 치마를 사고 싶다는 대학생 딸의 말에 얼른 몇만 원 보내주던 것도 아빠였다. 돌이켜보면 “~해주세요, ~사주세요”라는 말에 아빠가 얼굴을 찡그리거나 단칼에 거절했던 기억 별로 없는 것이 새삼 놀랍다.


무섭게만 여겼던 아빠가 준 따뜻하고 좋은 추억이다.




동안 아빠에게 입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한계치까지 미워하고 원망했다. 아빠가 내게 주었던 좋았던 것들은 까맣게 잊은 채 날 아프게 했던 모습만 되새김질했다.

냉정하기가 이를 데 없이 모질게 구는 아빠를 다시는 좋아하지 않으리라, 관심두지 않으리라 온 몸에 잔뜩 날을 세웠었는데, 아빠 소식에 귀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고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서로 너의 존재는 필요 없다고 등 돌렸던 우리가 어떻게 다시 한 밥상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 수 있게 되었을까. 아빠도 나도 다른 식구들도 각자의 마음고생과 우여곡절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냥 지금은

아빠가 나에게 주었던 좋은 것들이 내 안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아서, 상처가 조금은 아물어가서 다행이라고 여길뿐이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준 상처도, 우리가 함께해서 좋았던 기억들로 나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


아빠

무섭고 다정했던 아빠.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작가의 이전글 공시생인 동생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