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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당한 박선생 Oct 02. 2020

공시생인 동생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

눈치를 본다는 건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 집은  딸, 딸, 아들인 삼남매다. 80년대 자녀계획의 흔한 형태랄까.


진부하지만 막내는 어릴 적부터 착했다.

그 아이는 표독스러운 작은누나가 명하면 손 씻을 물을 대령하고, 목마를 태워달라면 기꺼이 어깨를 내밀던 바보같이 착한 놈이다.

차마 화도 내지 못하고 일기장에만 "작은누나 얼굴에 침을 뱉고 싶다"고 쓰면서 감정을 승화시키던 그 가 벌써 서른이 넘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월급받아오더니 공무원이 되겠다며 시험 준비를 한지 1년이 다되어간다. (그러고보니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착실히 살아왔다)




막내가 공부를 시작하고 우리집 TV볼륨은 2를 넘긴적이 없다.
시집간 둘째가 집에 놀러왔을 때 말고는 공부에 방해될까봐 적막을 유지했는그런 조용 생활이 하나도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막내는 막내인 것이다. 이놈이 방안에 틀어박혀 공부를 한다고 하니 왜 그리 기특하고 안쓰럽고 대견한지. 정말이지 하루종일 틀어박혀서 그 어려운 공부를 하는게 너무 대견했다.


언젠가 막내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청소나 좀 해줄까 싶어 방에 들어갔는데, 벽마다 공부내용을 메모한 종이가 빼곡히 붙어있는 것을 보고 그만 뭉클해졌다.

학창시절에 공부와 친하지 않은 놈이어서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힘들텐데,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기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그 가 존경스러웠고, 얼마나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는지 알 것 같았다.


덩달아 나도 간절해져버렸다.

10년도 넘게 안나간 교회지만, 기도를 한다는 것이 비웃을 일이지만 기도했다.


"하나님. 이 아이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부디 눈여겨 봐주세요. 저버리지 말아주세요. 혹여나 안 되더라도 내 동생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아주세요"




막내는 1년 정도 공부하면서 2번의 필기시험을 치뤘다.

첫번째 시험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봤지만, 두 번째 시험은 제법 긴장하는 것 같았다.

시험을 보고 조금 풀 죽은 얼굴로 돌아온 아이에게 수고했다 말했더 아니라 고개를 젓는다.

2시간도 채 안되는 시험을 위해 그동안 정말 애썼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자기의 노력은 박수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시험을 치루고 하루가 지났는데 그동안 쌓인 긴장이 풀려 잠을 자는지 하루종일 밥도 안먹고 방에서 꼼짝을 안한다. 나도, 엄마와 아빠도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신경 어느 한 구석은 막내의 방에 쏠려있다.


밤 9시가 좀 넘었을까. 드디어 방문이 열렸다.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에 엄마도 나도 동시에 다급 주방에 나가 불고기를 꺼내고 잡채를 데우고 김치를 꺼낸다.




막내야.

비록 너의 고됨을 덜어주지는 못하지만, 네가 온힘을 다해 노력하는 지금을 누나가 함께 기억할께.

 네가 실패만을 곱씹을 때, 용감하게 도전하고 치열하게 공부했던 네가 있었다는 것을 가 증명할께. 증인이 될께.

부디 힘 내렴.

성실하고 근성있게 공부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고 근사한지 넌 몰라. 조인성이 와도 지금의 너한테는 안될꺼야.


언젠가 이 글이 너에게 자부심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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