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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04. 2023

나의 살던 고향은 세비야시 마장동



세비야에 와서 살게 된 곳은 “Puerta de la carne”( 뿌에르따 델 라 까르네)라고 불리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고기의 문“ 근처였다. 


벽으로 둘러싸였던 세비야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문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는 데, 옛날 옛적에 문밖에서 도축된 고기들이 들어오므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서울로 치면 고기들이 입출고가 많은 마장동쯤이라고 해야할까?

이 문을 지나가면 바로 연결되는 곳이 유태인구역(Las Juderias=라스 후데리아스)이다. 

(아주 오래전에 스페인에서 유태인들이 좇겨나기전 모여살았던 지역이었다.)


구시가지의 오랜 유태인지구답게 동네는 끝을 모르는  미로의 연속이어서, 

매번 가던 길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어서 헤매기 일쑤다. 

구불거리는  길의 한적한 골목에선 대낮에도 바바리맨이 활동하는 모습도  여러번 목격했다.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바바리맨들의 컨셉은 참 비슷하다. 

조용하게 스리슬쩍 큰 서프라이즈를 선물한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까무라칠뻔 했다. 


이동네는 구시가지의 핵심이라, 안달루시아의 전통가옥들이 즐비하고 

그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는 곳이어서 사진찍기 딱 좋은  핫 플레이스다. 

그러나, 바닥은  매끈한 콘크리트가 아닌 거친 돌바닥이어서 힐을 신고 다니거나

여행객이 캐리어를 끌기에는 참으로 부적합했다. 게다가 개똥을 밟지 않게 조심조심 피해 다녀야 한다. 

온도가 40도씩 올라가는 한 낮에 그 돌바닥을 여행가방을 끌고 목적지를 못찾아 주변을 빙글빙글도는 관광객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때는 구글맵을 들고 여행하던 시절이 아니라, 종이지도를 한 손에 들고  더위에 지쳐 길 찾는 의욕을 잃어버린 한국인들을 보면 더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스페인까지 와서 한국인과 말을 섞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한번은 초면인 나에게 집이 가까우면 김치를 곁들인 식사를 할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집으로 초대해서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반응은 아니어서, 내가 알려 준 주변맛집에서 식사를 잘 했다며 그나중에 한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반가웠던 경험도 있다. 세상 참 좁다. 


이 동네의 장점은 주변에 플라멩코를 쉽게 즐길 수 있는 곳이 널려 있는 점이었다.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봐야 할 장소로 꼭 권하는 곳은 산타 크루스 광장에 있는 따블라오 로스 가요스(Tablao de flamenco  los gallos)다. 산타쿠루스광장에 있는 데, 광장이라기 보다는 잘 가꿔진  이쁜 마당이다.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봐야 할 곳을 딱 한 군데만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이곳을 추천한다. 

전통적인 플라멩코 쇼의 전형을 보고 싶다면 더더구나 이곳에서 보아야 한다. 

플라멩코의 유명한 댄서들이 이곳을 발판으로 성장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플라멩코 맛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직 댄서와 가수 기타리스트들이 번갈아가며 공연하니,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전용공간이 되었다고 해서, 가치가 폄하될 이유가 전혀없다. 수준급의 플라멩코 아티스트들의 이력을 보면 따블라오 로스 가요스에서 공연을 했었다든 이력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이쁘게 생긴 요크셔테리어를 잃어버렸다는 찾는다는 포스터를 봤다. 나도 개를 키웠었다.  그 이름은 ”미니무스“ 원래는 막시무스로 짓고 싶었지만, 막시무시로 짓기에는 요크셔테리어는 너무 작았다. 그래도, 이름은 라틴어로 지어 존재감을 증명해 주고 싶었다. 한번은 미니무스와 걷고 있는 데, 누군가 따라 오면서 미니무스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로스 가요스의 주인이었던 그분은 자기가 잃어버린 개가 아닌지를 시험해 보는 듯 했다. 그분이 포스터를 붙인 분 같았다. 그 맘은 너무 안타깝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개가 자기 주인을 못알아볼까나? 


나는 매일 이른 아침 미니무스를 데리고, 무리요공원(Murillo공원-세비야태생의 

유명 화가)으로 산책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미니무스가 시원하게 오줌도 싸고, 공원 전체가 자신의 앞마당이 되어 목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다른 큰 개들과 마주치지 않으면서, 평안하게 신선한 공기를 맞이할 때 즈음은 사실은 꽤 이른 시간이다. 그러나, 한국관광객들이 어김없이 무리요공원에 있는 기념비를 보거나,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미니무스는 ’내 집 앞마당에 웬 이방인들이 이렇게나 많이와 있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무리 사이를 돌아다녔다. 미니무스는 바이링구얼이라 한국어도 스페인어도 잘 알아듣는다. 내가 그렇게 키웠다. 외국에 살면서 나를 믿고 의지하고 반겨주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 고마웠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가슴이 찢어졌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의 순간도 있는가보다. 얼마전 본 미니무스는 이제 이빨도 조금씩 빠지고, 튼튼했던 근육도 조금씩 소실되어 가고 있었다. 건강한 털도 이제는 기름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와 함께 나이들어 가는 미니무스, 언제나 그리운 미니무스, 네가 그립다. 무리요 공원을 너와 함께 다시 걷고 싶구나. 내가 외로울 때 즐거울 때 항상 나와 교감해주었던, 내 여행가방에 매달려서 헤어지기를 거부했던 끝까지 테라스에서 나를 지켜보던 너를 기억한다. 

나의 외로움을 함께 나눈 내 친구. 너를 영원히 사랑해. 


세비야시 마장동 이야기는 넘 길어서, 두 편으로 나누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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