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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06. 2023

내가 살던 고향은  세비야시 유태인동네

내가 살던 고향은 세비야시 유태인동네      

무슨 살던 고향이 다양한가? 할 수 있지만,

동네가 불리는 이름이 다양했다.

내가 살던 세비야의 구시지가,

특히 내가 살던 구역이 그랬다.     

 

처음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살았던 곳이  

유태인지역이었는 데,

중세 세비야에 정착한 유태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이다. 스페인어로 유태인들의 구역을

후데리아(judería)라고 부른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후데리아는 톨레도가 있다.   


그 지역은 엄밀히 말하면 내가 주로 살던 산타 크루스(Santa Cruz)를 길 하나를 두고 있는 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가 거기지 뭐. 가까우니까,

대충 어디라 하면, 음 거기.

산타 크루스.라는 식이었다.

어쨌든 구시가지의 정점이었다고 보면 되는 데,

우리로 말하면 경복궁 근처 동네라고 보면 된다.

세비야대성당이 걸어서 5분이었으니 말이다.   


집 근처에서 멀끔한 유니폼을 차려입은 벨보이들이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수시로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는 데,

알고 보니 완전 럭셔리한 호텔이었다.

호텔 유태인의 집

(HOTEL LAS CASAS DE LA JUDERÍA).

우리로 치면 한옥호텔이라고 보면 되겠다.

 안달루시아식 건축물에 사가 깃든 장소인 데다가,  파티오라고 불리는 정원과 함께 투숙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그냥 현대식 건물에 몇 층 몇 호가 아니라,

낮은 건물에 꽃과 나무로 잘 꾸며지고

분수가 있고 하늘을 볼 수 있는 그런 아담한 호텔.

 감사하게도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외부에서  그 정원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집에서 한 블록만 가면 산타 마리아 교회가 있다.

그곳은 전에는 시나고가였다고 하니,

역사가 깊은 동네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에는 안타깝기도 하다.   

   

유태인지역(las juderias)에서 빼먹으면 섭섭한 곳이 있다.    

플라멩코를 정식무대가 아닌 곳에서 가볍게 즐기는 곳이다.  

상호명은 까르보네리아(Carboneria)라고 을지로의 간판 없는 대형 생맥주집 같다고나 해야 할까?  

한국처럼 간판을 찾기가 힘들고, 밤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더더구나 낮에는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

일수이다. 밤에도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왜냐면 유태인지역 자체가 워낙 미로 같아서 이다.


생맥주집처럼 왁자지껄하고 시끄럽지만, 좁은 입구를 지나면  메인 홀에서는 밤늦게 플라멩코 공연이 펼쳐지고, 정원에선 타로카드를 해설하고, 피아노가 놓여 있는 방에선 플라멩코 마니아들이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가끔은 즉석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관광객과 현지인의  구분 없이 엄청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밤을 지나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지라 주변에서 민원이 수시로 들어가서 영업중단과 재개를 밥먹듯이 한다.  

나도 가까이 살긴 했지만, 까르보네리아의 바로 옆 건물에

살던 내 친구말로는 밤에는 거의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니,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과거엔 예술가들이 모여 아지트로 삼으며, 사회적 정치적 상황들을 얘기하며 토론하고, 플라멩코를 중심으로 각자의 다양한 감수성을 교환했던 그런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곳이었다. 전시된 낡은 액자에 걸린 사진들과 통나무의자에 뭍은 때들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한 번은 밤늦게 친구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당시엔 왓츠앱이 없었던 시절)     

까르보네리아에 지금 호아낀 꼬르테스

(Joaquin Cortes:스페인의 유명한 플라멩코 아티스트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스타댄서)가 왔단다.

 집에 있으면 빨리 여기로 오라고, 지금 여기 난리 났다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호아낀 꼬르테스는  잘 나가는 연예인일 뿐 아니라, 플라멩코 남자댄서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모처럼 만에 김치를 만들어보려고,

 마늘 까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집 근처에 그 유명한 플라멩코의 전설이 왔다는 데, 마늘냄새나는 손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호아낀 꼬르테스 진짜 잘 생겼다.

게다가 항상 웃통을 벗고 무대에 서는 데, 

 어흑... 내 심장 돌려줘.


지금이야, 살짝 살이 붙었지만,

그때만 해도 몸에 지방 한 점이 없었다.

플라멩코의 대 스타이전에 어찌 보면 연예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맘이 더 컸던 것 같다.

난 그가 잘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친구가

야밤에 불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와 사진을 찍고 싶었다.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고자 긴 줄을 서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올레!!!  

나는 사진을 찍으며 준비해 간 엽서를 내밀었다.


호아낀에게 아직 한국은 플라멩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이때가 2001년이었음을 기억하자)

미래의 한국플라멩코 팬들에게 한 마디 써달라고 했다.

그가 쓴 말은 ”플라멩코가 너를 사랑하기 이전에 네가 먼저 플라멩코를 사랑해라 “라는 말이었다.

무슨 성경의 한 구절 같았다. 플라멩코에 갓 입문했던 나는  그 엽서를 고이 간직하고,

늦은 밤 내게 문자를 보내준 친구에게 고마워하며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 엽서와 사진 어디로 갔을까나?

찾아보면 어디 있을 텐데

집을 한번 뒤집어야 할 것 같다.  

이참에 한번 제대로 뒤집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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