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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09. 2023

플라멩코 왜 하세요?

 

플라멩코 왜 하세요?

이런 질문 참 많이 받는다.

뭔가 심오하거나 철학이 담긴 그런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도망가자~~

스탠딩 문화면, 슬쩍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자리 옮길 텐데...


살짝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그럴 듯 한

대답이 없는 나를 탓한다.

갑자기 플라멩코 왜 하나의 삼행시를

그럴듯하게

지어 낼 수는 없으니 되도록 친절하게 웃으며^^


“먹고살려고 해요(가능한 미소를 활짝 짓는다).

제 생계입니다.

춤추고, 가르치고, 강연하고 축제를 엽니다.

봄에 파티하니 놀러 오세요. ”라고 한다.


나에게는 플라멩코를 왜 하냐는 질문이

“회사는 왜 다니세요?”,

“공부는 왜 하세요?”

“ 왜 사나요?” 이런 질문과 같다.

실제 그렇지 않은가?


딱히 큰돈이 될 것 같지도 않은 데,

 왜 하는지가 궁금한 것 같다.


나의 대답은 “나 즐겁자고 한다.”

대답이 싱거워도 할 수 없다.

사실은 사실은 그냥 한다.

그리고, 더 이상 플라멩코놀이가 즐겁지 않은 날

직업 바꿀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덕업일치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헤헤, 그러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덕업일치도

로사항이  차~암 많다.


나에게는 반복되는 그 질문이 고루하지만,

나를 처음 만나거나 두어 번 더  만났더라도,

 질문자들의 물음에는 플라멩코와 스페인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함이

농축되어 있다


 감사합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라고 크게

말하고 싶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얼른 다른 주제로 대화가 넘어가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

이럴 때 보면 나는 E 가 아니라 I 같은 데,

이참에 관종력 키워 볼까나!


내가 경험한 것은 얼마든지 얘기해 줄 수 있다.

주변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흔치 않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과 마주한 그들과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본인들이 현지에서 봤던 플라멩코의

강렬했던 장면을 설명해 준다.  스페인에서의 즐거웠던 일부터 시작해서 도둑맞은 얘기까지 여행수다 보따리가 펼쳐진다.  

나는 그들이 경험한 짧은

플라멩코에 대한 기억 소환에 적극 동참해 준다.

공통점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얘기를 하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플라멩코를  '집시의 한'으로 표현한 예술이냐는 질문이  화두에 오를 때가 많다.



맞다.


'집시의 한'이라. 캬!!


아 맞다. 요즘 디지털 노마드 시대이니

디지털집시들이 플라멩코의 한을 0과 1로 잘

풀어낼 가능성도 있겠다.


플라멩코는 한 이라는 감정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들을 다 담을 수 있다.

누구는 '한'을 담고 누구는 '희'를 담는다.

그걸 담아내는 사람이 집시여야 할 필요는 없다.

 

집시들이 플라멩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플라멩코가 집시만의 전유물일까?

집시들이 하는 플라멩코만이

레알 플라멩코라고 믿는 사람? 

한국 힙합퍼들이 하는 힙합은 가짜라고

생각하는 분?


집시라는 말이 들어가면 뭔가 신비롭고,

환상을 줘서 그 인종만 가질 수 있는

범접하지 못할 그런 것이 있게 느껴질 수 있지만,

플라멩코는 짬뽕처럼 이리저리

많은 것이 섞였다.


비옥한 이베리아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

땅을 많은 사람들이 탐냈다.

나도 탐나는 데, 나도 수시로 가고 싶은 데

다른 나라 조상님들도 그랬나 보다.


스페인사람들 얼굴 보면 누구는 구릿빛에 누구는 금발에 누구는 파란 눈빛에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조상님들이 참 다양할진대,

콜럼버스는 한 술 더 떠 인도를 찾아 신대륙까지 갔다.


집시들도 안달루시아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사람들이 그라나다의 동굴에 가서 집시들이 추는

원시적시고, 신비로운 그 무엇을 보았다고 할 때,

딱히 맞장구를 쳐주고 싶지 않다.

그것도 플라멩코의 한 면임을 알고,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플라멩코라는 다양함을 알아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플라멩코를 왜 하는가?

 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나는 내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사회성이 좀 부족한 것 같다.

나는 밝고 사교적인 성격이지만, 동시에 소심하여 상처도 많이 받는다. 한 마디로 예민하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훌훌 터는 성격은 아니다.


그러나 내 의견은 뚜렷하여,

내 의사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남의 비유 또한 잘 맞추지도 않고,

이를테면 눈치가 좀 없다고나 해야 할까?

또는 그 말을 안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상황이 가끔 연출되고, 직선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얘기도 많이 한다. 


이 예민함을 받아 줄 사람이 별로 없어서

플라멩코랑 친구 했다.


나는 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내 친구 세뇨라 플라멩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선 꿈이 지나치게  소박한 것 아닌 가, 라며

거기에 머물지 말고,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다 옳은 말씀이다.

Muchas muchas gracias!

<대단히 감사하무니다>


우리 사회는 무척이나 경쟁적이고, 끝없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잠깐 삐딱선을 타면

그것으로 인해 내가 추구해 왔던 나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내가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 내 열정을 쏟아부었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대가를 평가받는 것에 대해서 도망가지 말아야 할 텐데, 어쩌면 그걸 정면으로 마주하기 싫어서  겁을 먹고 자꾸 뒷걸음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나를 계속 갈등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안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그 대열에서 처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노력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어쩌면 나에 대해서 일찍 잘 파악했던 것 같다.  사람에게는 관심이 있지만, 남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큰 다행이라 생각한다.


남들이 다한다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안정과 어떤 소속감 그리고, 퇴근 후의 그들의 회식을 부러 한 적도 많다. 게다가 회식은 공짜가 아닌다 말이다.

특히 스튜디오가 위치한 곳 먹자골목은 퇴근시간이면 곱창, 삼겹살, 막걸리, 호프집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퇴근 후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왜 저런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자리한다.


내가 왜 플라멩코 하냐고?

그렇게 내 인생의 드라마에 출연해 준

세뇨리따 플라멩코와

인생 즐겁게 살려고 한다.


너도 나와 재밌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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