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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Aug 11. 2019

남프랑스에서 ‘여권’ 지갑을 털렸다

나의 꿈은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것.


나의 꿈은 ‘디지털 노마드’다. 그래서일까! 1년에 서너 번 여행가방을 싸고 풀면 한 해가 뚝딱 간다. 열심히 일한 다음엔 잠시 떠났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가 ‘자유’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여행은 삶 속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직업상 남들 다가는 성수기에 여행을 떠나야 하기에 한 번은 이코노미석을 300만 원이 웃도는 값으로 결제한 적도 있다. 어느 도시가 나를 부르고 있다고 믿으면서, 여행할 때만큼은 과감하게 저지르고 본다. 노후는 고민하지 않고 번 돈을 죽죽 여행에 쏟아 붙는 것 같은 딸이 엄마는 불안하겠지만, 여행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언제나 그 이상으로 돌아온다. 인생이 곧 여행이듯, 나는 그렇게 삶과 여행의 발란스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남프랑스에서 여권을 털렸다가 돌려받은 후 여권을 펼쳐봤다

세포 속에 알알이 쌓아둔 여행 감성이 언젠가 나를 먹여 살릴 것이라는 근자감은 어디서 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좌우지간 그렇다. 여즉 단 한 번도 여행 중에 불행했던 적이 없었기에 어디든 자유롭게 경계를 풀고 다닌 것일 수 도 있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과의 로맨스도 여행의 경험을 값진 그 무엇으로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나도 가슴을 쓸어내린 송연한 경험이 있었으니, 바로 눈 앞에서 여권지갑을 털린 일이다. 그것도 파리 북역이 아닌, 남프랑스에서! 프로방스와 라벤더, 미트랄로와 지중해... 이런 말들과 어울리는 남프랑스는 어쩐지 소매치기와는 상관없어 보였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이번 여행은 파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남프랑스 Arles 아를로 향하는 빡센 여정이었다. 나흘 후면 다시 아무 일 없었듯 인천 공항에 내려, 여느 월요일과 같이 출근길을 걷고 있겠지! 뭐든 처음이 어렵지 여러 번의 반복된 경험은 어느 순간엔 아침밥을 먹는 것처럼 쉬워진다. 그러니 상황이 뻔하게 눈 앞에 펼쳐져도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즐기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도시, Arles 아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은 이미 ’별의 정서’로 가득했다. 이런 나에게 헤르메스(여행의 신)의 경고였을까? 테제베 TGV의 여러 경로 중에서 파리 리옹역 출발과 아비뇽 경유의 여정을 잘 따져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아침에 크루아상과 커피를 사서 여유를 부린 탓에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여행 중에는 약간의 느긋함이 때론 결정적인 실수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기차 객실은 중간에 연결 통로가 없어 자신의 좌석 칸에서 바로 타는 게 좋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사실이다. 이날 아침은 출발 1분 전에 기차 플랫폼에 도착한 터라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역 직원이 나를 보며 얼른 올라타라고 휘파람을 불며 재촉했다. 에라 모르겠다! 선로는 확인했으니 내 기차표에 찍힌 객차 번호와 먼 숫자일지라도 일단 탔다. 타고 보니 괜히 불안한 맘이 들었다. 이게 아비뇽행이 정말 맞는지 승객에게 두 번 확인을 한 후에야 안도감이 들었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와 본인 자리라고 할까 마음 졸이며 앉아 있긴 했지만, 남프랑스로 향하는 기차는 낭만이 있었다. 파란 하늘에 양털처럼 푹신한 구름, 연둣빛 향연의 프랑스 횡단길은 근사했다. 지난 몇 개월을 열심히 달려온 보상을 기차 안에서 다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달리고 또 달리니 경유지인 아비뇽에 도착했다.

남프랑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내게는 딱 40여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역 밖으로 나가 둘러보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마침 핸드폰 배터리가 다 돼서 역사에 있는 콘센트에 충전을 하며 기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비뇽이라는 도시가 궁금했지만 캐리어에서 물건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아를행 기차 대합실까지 내 무거운 캐리어를 옮겨준 맘씨 좋은 직원 아저씨가, 프랑스어로 말씀하셨다. "네 짐으로부터 손이나 눈을 절대 떼지 말라!"라고 말이다. 그때까지 그 조언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나는 마냥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 잠시 마실 나온 것처럼 세상 편안 태도로...

@아비뇽 역에서

아비뇽 역 내는 여느 소도시 역 풍경과 비슷했다. 캐리어 크기로 보아 먼길을 떠나온 여행객들과 가벼운 차림의 현지인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예쁘장한 소녀들도 있었다. 한 명은 선글라스를 끼고 벤치에 편한 자세로 있었고, 그 옆 다른 일행은 나와 눈이 몇 번 마주쳤더랬다. 생각해보니 선글라스 아래로 나를 계속 응시했었던 거 같다. 마침내 아를로 향하는 기차가 도착했다. 막, 객실로 오르는데 두 소녀가 갑자기 뛰어 와서 캐리어를 옮겨 주겠다고 했다. 나는 내 힘으로도 옮길 수 있어서 No, Thank you.라고 말했다. 그러니 돌연 언성을 높이며 뒤에 유모차가 오니 빨리 옮겨야 한다고 했다. 유모차는 없었다. 그러고선 내 캐리어를 힘으로 뺏으려 했다. 나는 경계태세를 갖추고 캐리어를 보란 듯이 짐칸에 올렸다. 잠시 자리에 앉았는데 맞은편 자리에 그 소녀들이 앉아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괜히 기분이 언짢아져서 캐리어를 내리고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숨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니 Avinon 아비뇽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비뇽의 유수와 피카소가 생각났다.


그 순간도 찰나. 좀 전에 그 소녀들이 도적떼처럼 다시 내게 왔다. 여기는 본인 자리라고 하면서 나를 힘으로 밀쳤다. 위협감이 느껴져 순간 소리를 질렀더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불과 몇십 초 동안 그렇게 실랑이를 하니, 두 소녀가 자리를 피해 떠났다. 휴~ 한숨을 돌리는데, 좀 전에 한 소녀가 왔다. “이거 너꺼다.” 하면서 내 여권지갑을 휙~ 던져줬다. 뭐지? 내 크로스 백에 넣어두었던 여권지갑을 가져갔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소름. 이렇게 털리는 거구나! 처음에 한 애가 먼저 내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었을 때, 다른 애가 가방을 열어 가져 간 거 같다.


유럽 여행 소매치기 팁!! 소매치기 일행 중 한 사람이 먼저 접근해 정신을 쏙 빼놓게 하고, 그 틈을 타 다른 일행이 와서 지갑을 훔쳐낸다.


여권 지갑 안에는 100유로 이상의 현금도 있었는데, 다시 돌아와 고스란히 돌려주고 간 이유가 지금도 궁금하다. 분명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주말이 가까웠고 파리가 아닌 남프랑스의 소도시에서 여권 재발급은 불가능했다. 출국날 아침 여권이 없어 인천행 비행기를 못 타고, 내 평화로운 일상이 복잡해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아비뇽역 플랫폼에서, 아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동양인 여자애가 기차에서 황당한 일을 당하니, 주변에 인간 천사 같은 프랑스인들이 하나같이 내게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다시 가방을 샅샅이 뒤져 잃어버린 것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고, 또 한 명은 경찰이 필요하면 불러 주겠다고 두 번이나 되물었다. 푸근한 인상의 노부부는 본인 일처럼 당혹스러워하고, 또 프랑스 청년은 인상착의를 물어본 뒤에 직접 잡으러 뛰어가기도 했다.


파리에서 아비뇽행 기차 안에서는 기대감으로 벅찼는데, 아비뇽에서 아를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놀란 가슴에 심장이 벌렁벌렁 했다. 해외여행 중에 여러 번 놀란 상황들은 있지만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을 당한 건 처음이었다. 내 복잡한 심경과는 상관없이 아비뇽을 떠난 기차는 약속대로 아를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내 사랑스러운 대한민국 여권이 안전했다. 예상대로라면 나는 제시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에 일단 안도했다. 작디작은 아를 역 정문을 나서니 뜨겁게 내리쬐는 남프랑스의 태양이 나를 반겼다. 아, 아를이군!

@ 아를 역에서

기차에 같이 탔던 프랑스 청년 둘이 와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었다. Are you sure you're okay? Yes, I am!


예약해 둔 집까지 걸어서 바로 10분 거리였는데, 걸어서 찾아갈 힘이 다 빠졌다. 역 앞에서 대기 중인 택시를 바로 탔다. 5분도 채 안돼 론강가의 빨강 파스텔톤 대문 집에 도착했다. 아치형의 하얀 벽돌로 만들어진 집이었다. 17세기에 만들어져서 20세기에 리모델링을 한 집이라고 했다. 벨을 누르니 흰머리가 매력적인 집주인 할머니가 반갑게 나를 반겨주었다. Bonjour 봉쥬르! 아! 긴장이 풀리니 아를이고 뭐고, 쉬고 싶은 맘이 간절해졌다.

@Arles, 고흐의 노란 집이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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