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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Feb 13. 2017

낯설게 하기 (defamiliarization)

파리 퐁피두 센터, 르네 마그리트 회고전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제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 들게 한다. by 르네 마그리트

새해맞이 며칠 , 또다시 파리 퐁피두 센터, 현대미술관이다. 유난히 눈에 띄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 철근 콘크리트의 반짝이는 불빛 사이로 '르네 마그리트' <Hagel's holiday>  검정 우산이 눈에 ~ 들어왔다. 'La trahison des images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제목의 회고전에는 르네의 말마따나 '보는 순간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하는 206개의 작품들이 5 섹션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지난봄에는 '파울 클레' 특별전이 열렸던 것으로 또렷이 기억되는 바로  장소다. 파리의 유수 미술관들은 특별전도 동시에 열릴 때가 많아 그때마다 세렌디피티 serendipity!  외치는 재미가 아주 솔솔 하다.

Hagel's holiday 우산을 보고 핵 이득! 을 외친 날
퐁피두 센터 앞 스트라빈스키의 분수(왼쪽)와 옥외 조각 전시(오른쪽)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가 생각나는 그래비티(아래)

날이 따스할 때는 퐁피두 센터 앞 스트라빈스키의 분수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겨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자유롭게 펼쳐진 그래비티 벽화를 감상해 보시라. (꼭 누텔라 크레페의 달콤함과 함께!)

퐁피두 센터 스트라빈스키의 분수대 앞에서 봄날의 행복한 오후를 보내며...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만이 우리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니. 눈을 돌리면 예술적인 것들로 가득한 인생이 된다.

끝이 보일 것 같이 않은 줄이 었는데 드디어 우리도 입장할 차례가 되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까 기회는 누구에게다 온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볼 때 그 대상이 뭔지는 한눈에 알겠는데, 배후에 숨은 뜻이 알듯 말 듯 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런 이미지가 주는 함축 때문일까? 벨기에의 이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여러 분야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애플 광고가 떠오르는 이 그림, <사람의 아들>은 이젠 왠지 친숙하기까지 하다.

사람의 아들, 1964년, 개인소장
심슨과 도서관 카드의 광고 (구글링 image 차용함)

그 유명한 골콩드 Golconde, 겨울비 작품을 직접 꼭 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없다. 뜬금없는 그림 제목이라 궁금해서 알아보니 골콩드는 인도 중부에 있던 왕국의 수도이자 다이아몬드 가공으로 부를 축적한 그야말로 빛이 나는 도시라고 한다. 중절모와 블랙 코트 차림의 남성은 아마도 르네 마그리트의 초상이었을까? 똑같은 차림의 신사들이 표정도 없이, 어떤 감정도 없이, 미동도 없이 그저 회색빛의 도시 위로 뚝뚝 떨어진다. 겨울 빗줄기처럼! 개성과 정체성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그껴진다.'끌리는 그림'은 그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획일적이고 무심한 면이 분명 내 안에도 존재하나 보다.

골콩드 Golconde,1953년

젊은 시절 광고와 관련된 일을 했던 르네 마그리트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넓혀 갔다.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에 영향을 받은 그는 형이상학적인 형태로 모든 풍경과 사물 그리고 인물을 배치, 조합해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을 무수히 남겼다.

Ceci n'est pas une pomme.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을 보고 피식 웃었다. 누가 봐도 사과인데 또 누가 봐도 파이프인데... 르네 마그리트라는 한 예술가가 가진 세계관에 왠지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맘이 생겨났다.

Ceci n'est pas une pomme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드디어 영어로는 insight, <통찰력>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 앞에 섰다. '통찰력 insight'이란 사물을 환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뜻한다. 그 단어를 보고 여고 시절 새로 부임하신 영어 선생님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분은 수업시간에 종종 인생에 관한 좋은 얘길 해주셨는데, insight 인사이트라는 단어의 참뜻을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은 인문학적 소양이 풍성한 분이셨던 거 같다.'우리 모두는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영어 선생님의 그 조언을 들은 후부터 insight는 줄곧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통찰력, 1936년

그림을 보시라. 마치 르네 마그리트 자신인양 그림 속 화가는 왼쪽 테이블에 놓인 하나의 알을 보고  날개를 펼친 새 한 마리를 그리고 있다. 화가의 통찰력으로 알 너머의 세계를 이미 본 것이리라. 이런 통찰의 세계를 접할 때마다 늘 잠들어 있는 영혼을 망치로 얻어맞는 것처럼 신선하고 새롭다.

르네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파리로 이주해 살바도르 달리와 친구가 되었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갔다. 현실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초현실에 집중했지만, 르네의 그림이 또 남다른 이유는 바로 데페이즈망 depaydement 때문이다. 불어로 데페이즈망은 고국으로부터의 추방, 즉 낯선 느낌을  의미한다.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친숙한 이미지와 장소가 아닌 예상치 못한 곳에 배치하고 이질적인 것들과 결합하여 생각의 틀을 깨버리는 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때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어색하고 불편함을 제공하기도 하고 퀴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벽난로에서 뚫고 나오는 칙칙폭폭 기차를 보고선 해리포터의 호그와트행 증기 기관차가 떠올랐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또 다른 세계로의 초대가 분명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르네 마그리트가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왕래가 있었고 그들의 작품을 꽤 관찰했었다는 것이다. 아마, 인상주의 그 이후의 시대가 오길 도래하며 자신의 내공을 열심히 길러 갔겠지.

유난히 관람객들이 그 앞에 서서 오래 머물던 그 그림. 이미 당신을 알기 전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연인의 절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앞에 나도 섰다. <연인> 어느 가수의 앨범 재킷에도 실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쓰였었던 것만큼 잔상이 깊게 남았다.

많은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인>

사는 게 바빠 주말이 돼서야 이렇게 맘에 여유가 겨우 생겨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럴 때는 르네 마그리트처럼 초시간적인 작품들이 유난히 더 맘에 들어온다. 볼 수록 빠져들거나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던 그 날. 전시회 맨 마지막 관람객으로 들어섰던 것만큼 내 눈에 그리고 상상의 그곳에 더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던 거 같다. By Sarah

단조롭고 진부한 이미지들로 부터 유쾌한 반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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