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파리
파리에 살면 살수록 나는 무언가 할아버지 시대의 자명 시계처럼 구닥다리 톱니바퀴가 고장이 날듯하면서도 용케도 잘 돌아가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고 그에 동화되었다. 그 편안함의 정체는 바로 삶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프랑스식 편안한 삶’의 정체다.
조승연, 시크:하다 중에서
#S1. 내가 만났던 그는 회사가 끝나면 에펠탑 주변을 산책하는 평범한 파리지엥이었다. 사이요 궁에서 바라본 에펠이 근사하다며, 잔디에 앉아 쉬어 가자고 했던 그 남자. 서머타임엔 밤 10시가 돼야 에펠의 불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처음 말해준 사람이었다. 조용히 파리에 갔던 나는 어김없이 에펠탑 근처에서 조깅하고 있는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참, 파리라는 도시는, 파리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대로구나. 그와 조우하면서 반가움이나 설렘보다는 늘 곁에 있는 공기처럼, 푸르른 5월에 부는 미풍 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S2. 빛바랜 올리브 그린 색깔의 미라보 다리위에서.. 그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과 이야기들이 꿈틀대는 이 도시를 참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파리에서 글 쓰고 사는 것'이 평생 꿈이라는 내 말을 그는 절대로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용기백배되는 말만 했다. 그 말의 씨앗이 내 안에서 꽃 피울 날이 오겠지!우리의 인생은 결코 통장의 잔고나 숨쉰 햇수로 평가받을 수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살아가면서 얼마나 숨막히게 벅찬 순간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속도를 얻으면 내 안의 풍경을 잃는다. 그래서 내가 본 아름다운 풍경들을 기억하기 위해 글자로 나만의 우주를 짓는다. by Sar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