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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Feb 21. 2020

빛의 향연에 취하다

파리, 마르모땅 모네 미술관에서

치열했던 한 주의 종착점으로 가는 금요일 아침. 여전히 수습같은 날들이 이어지면서 자존감이 처참이 무너지기도 할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그림으로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골랐습니다. 밤은 칡흙같이 어두웠지만, 해돋이의 동이 틀 무렵, 사방으로 새어 나오는 '빛의 환희'를 본 적이 있죠. 그럴 땐 그저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의 힘에 할말을 잃게 됩니다. 빛의 향연을 자유자재로 자신의 캔버스에 옮겨놓은  화가. 클로드 모네를 좋아하나요?


파리, Passy 동네 마르모땅 모네 미술관에 가면 
태양같은 희망을 만날  있다.
클로드 모네, 인상:해돋이, 마르모땅 모네 미술관 소장

해 뜨는 인상은 '르 아브르 항구 도시'에서 새벽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는 틀에 박힌 과거의 전통방식을 깨고, 다듬지 않은 새로운 미술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대상을 그리고, 빛의 변화에 따른 색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재현시키면서요. 이 그림은 인상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기념비 적인 작품입니다. 사실 인상주의라는 말은 당시 기득권에 있던 사람들의 비아냥으로 사용되었죠. 인상파의 시작은 악명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그들의 무리는 곧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됩니다.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뒤로하고, 결국 모네의 해돋이는 현대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요.


1911년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작품 레오나로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기의 도난을 당했다는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 역시 역사상 유례없는 무장강도의 미술관 침입으로 몇 년 동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답니다.


이 놀라운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매년 20만 명이나 되는 미술 애호가들이 뮤제 마르모땅 모네에 다녀갑니다. 당신도 모네의 팬이라면 파리 16구에 위치한 이 우아한 미술관에 꼭 한번 들러 보길 권합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을 먼저 보고 지베르니에 들렀다면, 마르모땅 모네 미술관도 놓치지 마세요! 50여 점의 모네의 그림들이 그곳에 가슴 벅차도록 반짝이고 있을 테니까요.

La Muette 역에서 내려 한적한 동네 길을 따라 뮤지엄에 가는 길

파리 16구는 원래 왕의 사냥터였던 블로뉴 숲 근처에 위치한 비교적 한산하고 부촌인 주택가입니다. 메트로 9호선 La Muette 라뮈에트 역 하차 후 밖으로 나오면 바로 친절한 표지판을 따라 걸으세요. 구글 맵을 켜고 도보로 5-10분이면 금세 도착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미술관 건물은 18세기까지 귀족들의 사냥 별장으로 이용되었다가 마르모땅 가문이 인수해 1934년 미술관으로 개관을 했어요. 파리 박물관 패스 적용이 안되고 11유로로 싸지 않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석조로 된 편안하고 클래식한 느낌의 미술관 건물 외관

처음 미술관 이름을 들으면 머리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모네의 풀 네임은 분명 클로드 모네인데, 마르모땅 모네라니! 그러나 모든 미술관에서는 저마다의 독특한 이야기들이 있죠.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 중에 하나입니다.


개관 당시엔 미술사 폴 마르모땅이 개인 전시관으로 쓸 예정이었고, 모네의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죠. 당연히 모네의 그림이라곤 단 한점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운명적이었는지, 여러 미술 애호가들의 도움과 기부로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모네 컬렉션이 되었네요. 특별히 빅토린 도노프 디 모쉬라는 이름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당시 해돋이 인상 작품을 비롯한 모네 작품 20여 점을 개인 소장 중이었는데 전쟁 중에 미술관에 도움을 받아 작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그 이후엔 자신의 소장품을 전부 기증을 했다지요.


물론 모네의 작품의 작품 이외에도 Seredipity 세렌디피티를 외칠 만한 수많은 작품들이 당신을 기다고 있답니다.

미술관 입구 들어가는 계단에 있는 마르모땅의 조각상
겨울의 미술관이 더 좋은 이유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니까. 1층 홀의 대리석 조각상이 참 매혹적이다.
샤갈의 그림으로 더욱 낭만 낭만 하게 된 1층 전시실에서

1층에는 중세부터 19세기까지의 그림과 조각 그리고 가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샤갈이 작품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는데, 푸른빛에 쌓인 신부를 보니 많이 행복해지더군요. 그래서 미술관 샵에 들러 샤갈의 Fiancee au visage bleu 엽서를 사는 것은 제 당연한 임무가 되었지요. 샤갈, 르누아르, 시슬리 그림들과 클래식한 분위기에 젖어 겨울 한파에 몸이 녹는 듯했습니다. 당시 귀족의 저택에 초대받아 들어와 있는 거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요.

은은하고 럭셔리한 인테리어로 더욱 돋보이는 인상주의 작품들

2층에는 프랑스의 여류 화가, 베르뜨 모리조의 섬세하고 따듯한 그림들이 관람객의 마음을 또 사로잡습니다. 마네가 그린 모리조의 모습들을 많이 봐왔는데, 그녀가 표현한 그림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가 알 듯 당시는 동양이나 서양 할 것 없이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힘든 시대였죠. 그래도 모든 역사에는 그 획을 달리 긋는 무수한 인물들이 존재해왔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그 모습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길을 개척해나간 시대의 위인들... 그들의 발자취를 보며 오늘도 작은 용기를 내어 봅니다. 모든 시작은 그 마음의 출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좌우지간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의 힘을 빌려 더 풍성하게 그림 감상을 할 수 있었지요.

베르트 모리소의 컬렉션으로 밝혀진 2층 전시관

드디어 발걸음을 돌려 지하 1층 전시관 Salle Monet를 둘러볼 차례입니다. 빛을 사랑한 화가, 클로드 모네의 방


가난한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는 다르게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누렸던 네입니다. 그는 꿈에 그리던 자신만의 아지트, 지베르니에 터전을 잡고, 그곳에 자신도 반할 만한 수생 식물원을 만듭니다. 200m나 되는 넓은 연못을 화가의 아뜰리에로 만들고, 30년 동안 200점이나 되는 수련 연작들을 탄생시키죠. 푸른 연못에 환하게 피어나 있는 수련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장수와 다작을 한 이 화가는 노후엔 백내장을 앓고, 점차 시력을 잃어 갔습니다. 물론 화가로서의 고통과 괴로움은 더했을 테지만 이미 신의 손을 빌린 걸까요? 마지막까지 수련 그리기에 몰두하며 오랑주리에 전시된 수련 연작의 대작까지 줄줄이 창조한 그니까요.

빛의 황홀함을  극대화시키는 모네의 수련 연작
모네의  수련 연작

파리의 크고 작은 미술관들은 직접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의 상시 전뿐만 아니라, 특별전이 수시로 열립니다. 겨울에 방문할 때는 스위스의 상징주의 화가 Hodler호들러, Edvard Munch 에드바르드 뭉크 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난간에 선 두 여인들의 그림과 색감이 너무 좋아 전시 도록을 샀네요.

뭉크의 특별전 이게 실화인지!
Edvard Munch : Dans la véranda, c.1902, Galerie nationale d'Oslo


프랑스의 겨울밤은 너무 빨리 돌아와 때로는 이방인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6시 땡! 미술관 클로징 시간에 밖에 나와보니 도시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네요.


미술작품이 더 이상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 그 마음과 뜻을 같이해 나라에 기증을 하고, 또 그 작품을 소중하게 보존하는 그 문화적인 힘과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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