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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Jul 21. 2020

여행의 이유

노르망디의 작고 예쁜 항구도시 '옹플뢰르 Honfleur' 에서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항구에 정박한 요트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칼바도스 주에 위치한 작고 예쁜 항구도시 '옹플뢰르 Honfleur'


노르망디의 진주 La perle de la Normandie 라는 애칭을 가진 옹플뢰르는 인상파 화가들의 도시다. 인상파의 시작이자 모네의 스승이던 외젠 부댕, 클로드 모네, 구스타브 쿠르베등의 수많은 화가들이 이 조그마한 항구도시 옹플뢰르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화가들은 답답한 실내 아뜰리에에서 작업을 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발상의 전환’이 화가들로 하여금 이젤과 붓을 가지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활로를 개척해준 것이다. 옹플뢰르의 반짝이는 햇빛이 너무 좋아 가만히 실내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지 않았을까? 사실 옹플뢰르는 전쟁의 도시기도 했다. 백년전쟁 프랑스와 영국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 구 항구를 넘으면 영국해협이 있는데, 영프 전쟁이 끝난 후에 옹플레르는 탐험가의 도시가 된다.

사뮈엘 드 샹플랭 Samuel de Champlain  은 프랑스의 탐험가이며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였다. 그는 이 옹플뢰르 항구에서 출항해 마침내 캐나다 퀘벡을 발견, 누벨 프랑스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는다.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의 정착지 중 항 곳인 퀘벡의 시초가 이 작은 항구에서 시작된 것이라니 참 흥미롭다. 그렇게 대항해와 모험의 시대를 보내고 지금의 옹플뢰르는 '예술의 도시'로 자리잡았다. 이 작은 도시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아롱아롱 보석처럼 엮여 있다.

빛이 아름다운 마을

언제나 작은 파티가 열리고 있는 항구 마을

노르망디의 목조 가옥의 하모니와 항구에 정박한 다채로운 요트들이 아주 매력적이다.

요트 타는 것이 취미였던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흠. 그는 자기 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카페에서 멍하게 앉아 오후 한 나절을 보내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사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시드르'는  반드시 맛보아야 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목조 성당인 생 카트린 성당에 들러 촛불을 켜도 좋고, 부댕의 뮤지엄과 수잔 발라동의 연인이었던 에릭 사틴의 사가에 들러도 좋다.

옹플뢰르의 주말 오후, 작은 갤러리들을 기웃거려보고, 꼬불꼬불 골목길을 어슬렁 거리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기분이 절로 든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참 묘미는 시공을 초월한 이런  '생의 감각'을 일깨워 준다는 것에 있다. 작은 갤러리 앞에 갔더니 한복을 입은 여인들의 초상화가 눈에 띈다. 노르망디 지역에서 한복 작품을 보다니 여행자의 상기된 마음이 한결 더 업 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리 전시회에서 보려고 했던 놀라운 작품을 영접했다. (하핫!)

관점을 디자인 하기 ♡


프랑스 초현실 조각가의 부르노 카탈라노 작품을 보면서 생각에 빠져든다. 형상의 심장 부분을 관통해 주변 풍경이 그대로 반영되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예술작품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 지를 가르쳐준다. 그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여행가방이라든지 지구본, 바이올린 등이 청동작품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매개체이다. 흔히들 인생 여정을 여행에 비유하는데 이 작가 역시 그런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손에 가방 하나를 들고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필살기가 있으면 하는 강렬한 소망이 일어난다.

부르노 카탈라노, 옹플레르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품


We ‘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The truth is, I now don't travel back at all. Not even for the day. I just try to live every day as if I've deliberately come back to this one day to enjoy it as if it was the full final day of my extraordinary, ordinary life.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영화, 어바웃타임 중에서
브루노 카탈 라노 (Bruno Catalano), 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 중에서 (작가홈피)
브루노 카탈 라노 (Bruno Catalano), 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 중에서 (작가홈피)
브루노 카탈 라노 (Bruno Catalano), 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 중에서 (작가홈피)

도시와 사람, 일상을 비움과 채움으로 작업하는 이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들 너무 좋다. 조각예술 하나만으로도 거리는 아름다운 뮤지엄이 된다. 그런 예술의 공간에 다녀온 날은 영혼이 배불리 채워진다. 프랑스 노르망디 옹플뢰르에서 By Sar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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