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기억을 담는 그릇

최영욱 작가, 달항아리 앞에서

by Sarah Kim
시간의 기억을 담는 그릇
최영욱 작가님의 달항아리 앞에서


전시회에 가면 오랫동안 머무르게 되는 그림이 있다. 달항아리가 그렇다. 어디 하나 정중앙을 고집하지 않고, 조금은 기울고, 미세하게 눌리고, 가만히 안쪽으로 숨을 고른 듯한 곡선.


달항아리


가장 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을 품고 있는 그릇. 그래서 달항아리가 참 좋다. 나는 그 앞에서 서면 내 마음도 한번쯤 비워내고 다시 채우고 싶어진다.


아트부산, 달항아리 앞에서


최영욱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달항아리’라는 전통의 오브제를 회화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작가다.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아트페어를 통해 ‘시간이 깃든 감정의 그릇’을 주제로 꾸준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품은 빌 게이츠 재단, 스페인 왕실, 아트선재센터,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통을 담되, 단순한 복제가 아닌 철학적 사유와 현대적인 해석을 담은 조형언어로

많은 이들의 내면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최영욱 작가, 달항아리


카르마(Karma) 시리즈
근데 작품명이 왜 카르마지?


‘카르마(Karma)’는 산스크리트어로 “행위” 혹은 “인연과 결과”를 뜻한다. 최영욱의 달항아리 시리즈는 단순한 형태의 재현이 아니라, 삶의 기울기, 상처, 기억, 그리고 되돌아보는 시선을 하얀 항아리 안에 담아낸 회화적 수행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항아리 위에 겹겹이 쌓인 붓질은 때로는 상처 같고, 때로는 시간이 지나며 엷어지는 감정 같고, 또는 “살아낸 나”라는 이름의 흔적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도자기를 굽지 않지만,
그림 속 달항아리를 통해 내 삶을 빚는다.


그의 달항아리는 완벽한 좌우대칭이 아니다. 비대칭, 찌그러짐, 기울기—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함을 직조한다. 세상을 다 품고 있는 가을밤에 뜨는 보름 달처럼 말이다.


사유의 순간
나의 마음을 그 안에 담다


달항아리를 바라보며 어쩌면 나도, 그 안에 있는 무엇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처가 있어도 금이 가지 않게, 텅 비었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게, 기울어져도 중심을 잃지 않게.


최영욱, 달항아리


마음도, 그릇처럼 조금씩 찌그러질 수 있다는 걸,

그게 오히려 더 사람다운 모양이라는 걸

달항아리는 조용히 말해준다.


훌륭한 작품이란 감상자로 하여금 자신을 반영해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항아리 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항아리를 통해 어느새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수도 있으니까! 마음의 곡선은 곧 삶의 곡선이다. 달항아리를 바라보며 배웠다. 기울어도 괜찮다는 것. 상처도 결국 결이 된다는 것. 시간은 무너지지 않게 우리를 다듬어간다는 것.


달항아리, 시간의 기억을 담는 그릇.
그리고 그 곡선은,
곧 내 마음의 곡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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