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억의 궁전
루브르 박물관
출구 없는 미로, 위대한 보물창고
팔레 루아얄의 정원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우리는 거대한 벽 앞에 서게 됩니다. 보들레르가 도시를 관찰하며 시를 구상하던 자리, 발자크가 인물들의 운명을 그리던 풍경에서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이번에는 인류의 기억을 품은 궁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바로 루브르입니다. 도시는 늘 이렇게 돌연히 풍경을 바꾸지요. 파란 하늘이었다가 금세 흐려지는 변화무쌍한 이 날씨처럼요.
언젠가 한 번은 루브르 가는 길, 벽 한 면을 채운 아이폰 옥외광고사진을 봤어요. 한국은 여전히 코로나19로 거리두기, 마스크가 전면 생활화 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반려강아지를 본가에 맡기고, 오랜만에 파리에 들렀던 해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아이폰 14를 가지고 있었고, 애플 빅팬이기도 한 저는 순간 와우, 탄성과 함께 웃음이 났습니다.
예술의 궁전에 요즘 세상 가장 핫한 스마트폰이라니! 생각해 보니, 본질은 같았습니다. 고대 파라오는 돌에 얼굴을 새겼고, 르네상스의 화가는 캔버스에 빛을 담았으니까요. 오늘 우리는 손 안에 이 작은 기계에 하루의 기억을 아주 성실히도 저장합니다. 시대마다 방법은 달라도, 인간은 언제나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 하는 존재였던 겁니다. 그 연속선 위에 루브르도 있고, 아이폰 광고도 있습니다. 고전과 현대가 겹쳐지는 순간, 저는 오히려 루브르라는 공간의 본질을 더 선명히 볼 수 있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루브르는 세계인의 미술관이라는 위상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 보물들이 모두 정당하게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은 오랫동안 유물 반환을 요구해 왔고, 루브르는 여전히 제국주의적 수집의 그림자 속에 서 있으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런던은 미술관을 만인에게 무료입장의 혜택을 주는데, 루브르도 그런 정책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나저나 반짝이는 유리 피라미드를 보니, 그것은 단순한 입구가 아니라 선언처럼 보였습니다. 중세의 요새, 절대왕정의 궁전, 혁명의 무대, 그리고 오늘의 미술관. 루브르는 그 모든 시간을 켜켜이 겹쳐 안고 지금도 우리 앞에 서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댄 브라운이 소설과 영화, 다빈치 코드를 기억한다면, 이곳은 픽션과 현실의 묘한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한밤 중의 루브르를 그야말로 '이 도시의 반짝이는 별'로 만들어 버리는 유리 피라미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인 이오 밍 페이 작품입니다. 1988년 고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루브르를 전에 없이 위대한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그랑 루브르' 그 야심 찬 계획 아래,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출입구를 이 유리 피라미드 아래 하나로 모읍니다. 여기서 잠깐! 루브르의 입장 대기줄이 밑도 끝도 없이 길어, 도무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때는 지하 피라미드 입구로 들어가는 방법을 기억해 주세요!
루브르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전시실을 방문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가 남긴 기억의 방으로, 욕망과 질문의 서고로 들어서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관람자는 늘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합니다. 압도와 혼란. 루브르는 크고, 복잡해서 갈때마다 길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길 잃음이 루브르의 본질인 거 같아요. 출구 없는 미로에서 멈출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발견을 얻으니까요.^^ ( 단, 신발은 아주 편한 것으로 짐은 최대한 가볍기를 강추드립니다!)
루브르에서 걷기는 단순히 도시 산책이 아니라, 문명 전체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리고 결국 묻게 됩니다. “오늘은 내가 루브르를 다 볼 수 있을까?” 정답은 언제나 Nope! 루브르는 그렇게 불가능을 통해, 오히려 현재의 발견을 선물합니다. 한 번에 다 볼 수 없기에, 지금 눈앞의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배우니까요.
루브르, 산책자의 작품 감상 루트
1. 광고와 패션의 뮤즈 ― 사모트라케의 니케
Just Do It
오랫동안 사랑을 듬뿍 받아온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NIKE 로고와 광고 카피는 지구인이라면 누구든 알 것입니다. 한번 봐도 딱 봐도 곧바로 알 수 있는 나이키 로고의 기원을 추적하려면 흠, 이곳 파리 루브르 박물관 NIKE 조각상 앞으로 모이면 됩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그리스 조각으로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150여 년 전 아테네 에게해, 사모트라케 섬에서 150m에 달하는 허리, 몸통, 가슴, 날개 조각상 파편이 발견됩니다. 발견 당시엔 형채를 알 수 없는 파편 덩어리에 불과했는데 루브르의 복원 작업 큐레이터들의 15년간의 협업으로 1879년 루브르에서 첫 전시대에 오릅니다. 지중해의 부드러운 바람을 마주하며 뱃머리 끝에 아름답고 우아한 날개를 펴고 착지하는 여신을 마주하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우리는 이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는 모습을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지요. 머리도 팔도 없지만, 옷자락의 주름과 날개 끝의 떨림은 여전히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승리는 완전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핍 속에서 더욱 강렬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작품을 보며 예술이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힘’ 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승리의 여신 니케는 실물로 보면 정말 아름다워, 보고 또 보고, 또 보게 되요. 기원전 어느 누군가의 작품 파편들을 모아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재탄생시킨 루브르의 솜씨는 말해 모해.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탁월합니다
2. 이 그림은 왜 이렇게 유명할까 ?
세계의 아이콘이 된 신비한 미소 ―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사람들의 발길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여러 복도와 전시실을 지나, 작은 캔버스 앞에 모여든 무리들 사이에 서게 됩니다. 그녀, 모나리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본 얼굴.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림입니다. SNS 프로필 사진으로, 박물관 기념품으로, 각종 굿즈의 표지모델로, 심지어 라테 위의 거품으로 등장하는 그 얼굴. 사실 그림 그 자체보다도 수많은 복제와 스크린을 통해 더 익숙해졌죠. 생각보다 너무 작은 이 그림은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벼, 자세히 감상할 여건이 전혀 안됩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건 예술작품의 아우라라기보다, ‘현대의 아이콘’이라는 사실만 더 강렬히 느끼게 되요.
3. 절망과 희망이 만나는 방 ―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좌)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우)
루브르의 대형 회화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두 거대한 캔버스가 나란히 있습니다. 한쪽에는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 다른 쪽에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가.
이 방은 마치 인류가 겪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압축해 놓은 무대 같습니다.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은 실제 난파 사건을 바탕으로, 제리코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시체 해부까지 참고하며 집요하게 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거대한 뗏목 위, 죽은 자들이 널브러져 있고, 살아남은 자들은 마지막 힘으로 팔을 들어 구조선을 향해 신호를 보냅니다. 이 광경은 비극이자 인간의 생존 본능의 기록입니다.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파리 7월 혁명을 배경으로, 깃발을 치켜든 여성이 군중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쓰러진 병사와 총을 든 시민, 어린 소년까지 — 혼돈 속에서도 희망의 불꽃이 타오릅니다.
이 장면은 이후 혁명의 상징, 음악 앨범 커버, 시위 포스터로 끝없이 변주되며 오늘까지 살아 있습니다.
같은 방, 두 작품은 서로 대조적입니다. 한쪽은 절망의 바다에서 마지막 몸짓을 보여주고, 다른 쪽은 혁명의 거리에서 새로운 깃발을 올립니다. 죽음과 삶, 침몰과 전진, 패배와 희망이 이 방 안에서 동시에 울립니다. 메두사의 바다 위 손짓과 자유의 깃발은 서로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둘 다, 인간이 역사의 한복판에서 남긴 가장 절박한 신호이기도 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