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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kim May 19. 2023

당신의 ‘초심’은 안녕하십니까?

지금의 브랜드를 시작한지 16년.

우리 브랜드는, 첫 구매 후 재방문과 재구매로 연결되는 소위 ‘충성고객’이 많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 초기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며 우리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고객들도 많다.


나의 오전 일과는 밤사이 올라온 고객 리뷰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디자인에 대한 피드백, 핏과 소재, 사이즈에 대한 의견이 주를 이루지만

가끔은 나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리뷰도 있다.

바로 “초심을 지키세요!”라는 글들이 그런데, 이 ‘초심’이란 단어는 밉상인 단골손님처럼 종종 등장한다.

보통 초심을 지켜달라는 고객들은 아주 사소한 문제들, 

예를 들면, 실밥이나 단추 정리가 깔끔치 못한 옷을 받았을 때, 혹은 생각한 원단과 다를 때(그럼 무조건 나쁜 원단이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반품 배송비나 교환처리 등.. 원하는 요구대로 처리되지 않을 때 리뷰에 화풀이를 하는 식으로 글을 남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거기서 한단계 더 진도가 나간 글을 발견했다.

“잘 나간다고 변했네, 가격도 올린 것 같고. 제발 잃어버린 초심을 지키세요. 반성 쫌! 하시구요”

아침부터 충격이 심하다. 속이 막 뒤틀리고 분노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뭐~ 이런 걸로 초심을 잃고 변했다고? 올챙이 적 생각 않는다는 말인가? 거기다 반성 ‘쫌!’ 하라고? 아니 이 사람이 진짜~’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의 증폭이다.

보통 이렇게 문장에 감정이 실려 있는 강한 리뷰를 만나면, 씩씩거리며 억울하다는 생각에 며칠간 맘 다스리느라 고생하기도 한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하듯.. 초심에 대한 나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 봐야겠다.

‘나는 정말 초심을 잃었는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초심을 좀 잃어버리면 안되나? 결코 잃어서는 안되는 그리 중요한 것인가?

왜 모두들 ‘초심 지키기 위원회’에 가입한 것처럼 초심을 지키라고 하는가?


초심

(初心)

1처음에 먹은 마음.

2어떤 일을 처음 배우는 사람.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본다.


‘처음에 먹은 마음’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처음 먹었던 마음은 완전한 것이었을까?

‘어떤 일을 처음 배우는 사람’과 같다는 것은 무엇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문득, ‘초심은 풋풋하고 설레는 첫사랑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첫 사랑은 어땠었지?

마치 오늘만 살 것처럼 다 쏟아내고, 오로지 그 사람 생각으로 꽉 차 있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사소한 일에 무모하리만치 목숨을 걸기도 하며, 한마디 말에 기뻐 뛰기도, 한없이 슬퍼지기도 하는 감정 기복의 끝판 왕. 행복하지만 그 이상으로 맘 아프고 짠 한 첫 사랑.

마음만 앞섰지 어설프고 서툴러서 그 미숙함 때문에 실수도 후회도 많았던 그 첫사랑 말이다.

그래, 그런게 초심이라면 난 초심을 잃어버리길 참 잘했다.

그 초심을 가지고는 이렇게 긴 시간을 버티고 견디는 일 같은 것은 할 수 없었을 테니까. 

화르르 강렬하게 불타올라, 진즉에 모든 것이 소멸되었을 것 같은 상상이 드니 조금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마치 23년차 부부로서의 지금이,

처음 연애할 때 지지고 볶고, 또 결혼해서도 10년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시간과는 비교도 안되게 더 편안하고 행복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삶의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며, 초심만 지킨다고,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는걸 배웠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성숙함과 노련미가 만들어 내는 여유와 편안함이 좋고,

그 능숙함으로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가족과 일, 더불어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많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니까 말이다.


‘초심’ 논쟁의 결론을 지어볼까? 잃어버린 초심 대신,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심

(眞心)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本體).


그래, 내 마음은 진심으로 가득 차 있구나.

매일 아침 여전히 리뷰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고객이 남겨준 짧은 글 하나에 마냥 좋아 웃기도 하고, 속상해 울기도 한다. 더 잘해보겠다고 결심도 하고, 억울함과 분노로 불타오르기도 한다. 얼핏 보면 초심과 비슷한 것 같지만, 그 감정에 결코 휩싸이거나 중심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가려고 하는 긴 여정의 목표에 견주어 옳고 그름을 분별해간다.

주어진 일에 정성된 마음을 담으려 매순간 열심을 내고, 진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모든 관계를 소중히 여기려 노력한다. 

어제 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견디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최선을 다 해 ‘진심‘을 지켜가고 있다.


이제 당신이 내게 초심을 지키라고 말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겠다.

‘초심’은 잃었지만, 당신을 위한 ‘진심’만은 꼭 지켜 나아가겠다고.


자, 이제 ‘진심’을 다해 힘찬 하루를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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