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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Oct 27. 2022

인종차별주의자 이웃 & 통쾌한 복수 2

해외에서의 인종차별에는 이렇게 대처하세요! <제니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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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가 단톡방에 올린 사진은 거실에 온통 똥물이 튄 사진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난 아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내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거다. 샤덴프로이데¹ 현상이 생기려고 한다.


제니퍼가 단톡방에 올린 사진


알고 봤더니 그 누구의 소행도 아니었다. 건물의 하수도관이 제니퍼 집의 천장 쪽으로 지나간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수리 목적인지, 직접 보이게끔 되어 있는 구조도 신기했다. 제니퍼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아 갔었지만 그것까진 보지 못했었다.


그 노후된 관이 부식하여 두께가 점점 얇아지다 구멍이 났나 보다. 사실 그게 어떻게 뚫릴 수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 건물에 사는 모든 주민들의 대소변이 제니퍼 집 천장에서 뿜어졌다. 며칠 지나 발효된 분량은 물론 지금 막 생산된 따끈따끈한 것까지……. (개중에 내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단 한 방울의 오물이라도 냄새가 굉장할 터, 이렇게 관이 터져버리니 온 집안에 진동하는 악취는 말할 수 없이 역했을 테다.


어떻게 동생이 말한 대로 됐을까? 동생은 단지 집 앞에 똥칠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집 앞이 아니라 집 안 곳곳에 분뇨가 뿌려진 이 상황은 동생이 말한 것보다 100배나 더 참담했다. 아무래도 동생이 돗자리를 펴야 할 것 같다.


세상 일은 말한 대로 된다!
&
세상만사 뿌린 대로 거둔다!


내 귀에는 제니퍼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분뇨가 묻은 소파와 탁자 등의 가구는 아마 전부 버려야 할 것이다. 참, 그 집 거실엔 피아노도 있었지. 설마 피아노에도 오물이 묻었을까? 그 와중에 나는 피아노의 안부가 궁금했다. 이웃들 앞에서 내가 쇼팽 즉흥환상곡을 연주했던 피아노였다.


어쨌거나,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초자연적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혀 주다니! 육체적 위해가 가해진 것도 아니므로, 이걸 누구에게 원망하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순간 그녀가 살짝 딱한 마음도 들었지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던 건 어쩔 수가 없다.


그 후 제니퍼는 도망치듯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1년이 다된 지금까지 그녀의 집은 비워진 상태로, 간간이 청소 도우미만 다녀간다. 어린 나이에 파리 중심부 아파트를 두 채나 소유한 부자이므로 집을 좀 오래 비운다 한들 그다지 치명적인 손실은 아닐 거다. 그나저나 냄새가 빠지려면 아마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똥에 향수 뿌린다고 똥냄새가 사라지진 않으니까…….


내 눈앞에서 인종차별주의자가 치워졌다. 이건 ‘말’이 현실화 & 체화된 기적이자, 자신이 뿌린 것을 스스로 거둔 사건이다. 그것도 단 시간에.


그러게, 제니퍼! 마음 좀 바로 쓰지 그랬니?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인종차별주의자들>


내가 한국을 떠났던 23년 전, 프랑스에서 동양인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약 십 수년 전엔 일본인들이 엄청나게 여행을 나왔었고, 그 후엔 한국인들이, 요즘은 중국인들이 판을 친다.


한 번은 수업을 마치고 벨기에 패스트푸드 체인인 "퀵"에 갔었다. 열심히 내 햄버거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막 햄버거를 다 먹고, 음료수 잔을 기울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장난이 보통 장난이 아니었다.


빨대로 음료수를 쪽 빨아서 내 얼굴 쪽으로 훅 하고 내뿜었다. 한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했다.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지?’ 흔히 맘에 드는 여학생에게 하는, 치기 어린 남자애들의 짓궂은 장난 아닌가 하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당시 내가 받은 인상은, 이상한 종자를 발견했다는 듯한 심각한 인종차별이었다.


성질 같아서는 녀석들을 확 잡아다가 내 앞에 무릎 꿇리고 싶었지만, 힘없는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원더우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적어도 무술 유단자라서 저들을 때려눕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현실은 눈이 쫙 찢어지고 왜소한 몸집의 동양 계집애였을 뿐이었다.


또 이런 웃긴 일도 있었다.


<베트남 식당에서…>


한국 친구들과 베트남 식당에 갔었다. 총 4명인 우리 일행은 안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다. 비어 있던 옆 테이블에는 우리보다 한 참 뒤에 프랑스 커플이 와서 앉았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홀서빙을 하던 동양인 여성은 우리보다 뒤에 온 프랑스 커플에게 메뉴판을 먼저 갖다 주었다. 주문도 그들을 우선시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도 이에 질세라, 서둘러 주문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올 때가 되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서빙 직원이 옆 테이블에는 소스 종지를 1인당 하나씩 놓았다. 그리고 우리 테이블에는 소스 종지를 중앙에 딱 하나 놓았다. 동양인이 동양인을 인종 차별하는 현장이었다. 우리 중 다혈질인 친구 하나의 눈이 뒤집혔다.




인간은 타인을 훈계할 수 없다. 그런다고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도 잘 듣지 않는 게 인간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제니퍼나 빨대로 장난친 남학생들, 그리고 베트남 식당 종업원들에게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해봤자 아무도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제발 그런 행동을 하지 마세요”라고 애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때는 오히려 돌직구로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들이 아무 말도 못 한다. 그 돌직구란 바로...


“당신, 인종차별주의자죠?”


약간 완곡하게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닌 거 같은데, 맞나요?” 이 정도만 말해도 효과적일 것이다. 굳이 울그락푸르락 할 필요도 없다.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이 한마디면 다 통한다. 누구도 자신의 인격이 개차반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싶어 하진 않는 법이다.


해외 생활이 녹록지 않다. 경제적인 측면, 사회적인 측면을 비롯해 본인의 심리적인 측면까지 두루두루 힘들고 어려운 일이 포진해있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돈 떨어지는 것과 해외에서 돈 떨어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게다가 제니퍼 같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등 사회적 편견에도 맞서야 한다. 지독한 외로움이나 향수, 자존감 하락과 같이 스스로 극복해야만 하는 난제도 만만치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유사시 말 한마디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은 참으로 상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론 돌직구도 상당히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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