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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Oct 28. 2022

변기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아라비안 나이트, 기묘한 ‘지니’ 도시괴담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집 변기는 사흘이 멀다 하고 막혔다. 다른 집도 이렇게 자주 막히는지 궁금했다. 왜 그럴까… 혹시 내 똥이 너무 굵어서?


우리 집엔 북아프리카 모로코 출신의 가사 도우미가 있었다.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 와서 청소와 요리를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위생관념은 상상을 초월한다. 쓸고 닦는 자세가 날아갈 듯 자유롭기 짝이 없어서, 제대로 좀 해주십사 부탁을 하면 기상천외한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내일 또 더러워질 텐데
오늘 깨끗이 할 필요가 있나요?


그녀 말이 맞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더러워질지언정 오늘은 오늘 대로 깨끗해야만 하는 거 아닌가. 아프리카인들이 그렇게 미래지향적일 줄은 몰랐다.


우리 집을 청소하는 그녀는 행주인지 걸레인지 모를 모종의 천 조각으로 온 집안을 청소했다. 선반도 닦고, 식탁도 닦고… 그러다가 그 천으로 변기 안팎을 야무지게 닦는 것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제발 화장실용 걸레와 식탁용 행주를 구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끝내 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위생 규칙을 매뉴얼로 정할 수밖에…….


변기가 막힐 때마다 수리공을 불러서 변기를 뚫었다. 내 힘으로 막힌 변기를 해결할 수 없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뚜러뻥이나 화학용 액체로 어떻게든 해볼 수는 있겠지만, 해결하는 동안 넘쳐나는 분뇨는 내가 감당하기 벅찼다.


너무 자주 막히는 변기 덕분에 수리공을 부르는 비용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도우미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들어가는 것은 보았으나,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여전히 그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문을 확 열어버렸다. 하필 그날따라 그녀가 화장실 문을 잠그는 걸 잊어버릴 게 뭐람!


그 순간 나는 똑똑히 보고 말았다. 그녀가 실천하고 있는 깜찍한 행동을.


그녀는 집안 구석구석을 비질하고 쓰레받기로 갈무리 한 오물을 화장실 변기에 탈탈 털어 넣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나보다 그녀가 더 놀라고 있었다.


우리는 거실에 나란히 앉아서 그 상황에 대해 토론을 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뭘요?”

“왜 집안 청소한 후 쓰레기를 변기에 넣는 거죠?”

“그럼 안 되나요?”

“당연히 안 되죠. 우리 집 변기가 자주 막히는 이유를 이제야 찾았네요.”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무턱대고 짜증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타이르기로 했다.


“부탁이에요. 이젠, 집안 청소 후의 오물은 변기에 넣지 말아 주세요.”

“알았어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진심 이해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호를 해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상하고도 기묘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랍권에서는…….

물이 닿는 모든 물건에
‘영’이 깃든다!


고 한다. 그것은 특별히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것이 악하게도 선하게도 변한다는 것이다. 그 ‘영’의 이름은 ‘진’이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바로 그 ‘지니’와 동일하다.


도대체 물이 닿는 물건은 무엇이며, 변기에 쓰레기를 넣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물이 닿는 물건이란, 프라이팬, 세면대, 수도꼭지 등 그야말로 정말 물이 닿을 수밖에 없는 물건들이다. 램프와 변기도 포함된다. 사실, 램프는 물보단 불과 더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들은 램프에서도 ‘지니’가 나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오는 ‘영’들 중 최강자는 변기에서 나오는 것이란다.


변기에서 출몰하는 ‘지니’는 선한 느낌이라기 보단 악한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변기 귀신을 아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화장실 괴담이 있나 보다. 근대화 이전의 한국에서는 수세식 변기 보급률이 낮았다. 집집마다 푸세식이라고 하는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그 변소에서는 심심하면 귀신의 손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와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라고 했더랬다. 그 괴담은 세대를 거쳐 조금씩 변형되어 내려오면서 아연실색할 도시괴담으로 자리 잡았다.


아랍권 역시 화장실에서 귀신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들은 그 악한 지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한다. 그것은 바로 변기 속에 못이나 클립 등의 뾰족한 쇳덩이를 넣는 것. 필요하다면 오물이라도 집어넣어 귀신이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도우미가 청소를 할 때마다 번번이 화장실에서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보냈었다. 설마 우리 집 그녀가 퇴마의식이라도 했던 걸까? 정말 변기 속에 귀신이 상주한단 건가? 바야흐로 무협 시대가 도래했단 말인가?! (아니다. 장르로 따지면 납량특집이다)


그녀도 알 것이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미신이란 것을. 그러기에 그녀가 변기 막힘 유발 행동을, 문을 잠근 채 은밀하고 위대하게 하며 내겐 알리지도 않았을 터.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다면 아마 내게 말을 했을 것이다.


그녀의 사고방식을 내 힘으로 개화시킬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청소 규칙을 매뉴얼화했지만, 그녀는 내일도 모레도 여전히 변기 귀신이 무서워 온갖 물건을 그 속에 집어넣을 것이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오 마이 갓!



이 글은 필자가 오래 전 <샘터>라는 월간지에 기고했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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