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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16. 2022

프랑스 할아버지가 절규한 한국의 이 빵

프랑스에서 사용하지 않는 식재료

그날도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제자 중 한 학생이 갑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루시라는 그 아이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자애다. 눈은 엄마를 닮아서 얇고 세련된 쌍꺼풀이 있었고, 코는 아빠를 닮아서 오뚝했다. 엄마 닮은 머릿결은 차분한 직모였으며 색상은 아빠를 닮아 애쉬 브라운 느낌의 금발이었다. 유전자의 신묘막측함이란 참으로 놀랍다.


여름방학이면 한국의 외가댁에 가곤 했는데, 이번 여름엔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더란다. 루시와 그녀의 오빠와 부모님, 그리고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에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가세하여 엄청난 인원이 자동차 2대에 나눠 타고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했다고 한다. 정말 다복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프랑스 할아버지의 보수적인 식성으로 인해 가족들이 고생을 좀 한 모양이었다. 집안의 어른으로서 즐거운 여행 중에 감정을 날카롭게 드러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식사 때마다 할아버지가 제대로 못 드셨을 테니, 가족들의 심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빵집을 지나게 되었다. 빵집에 진열된 어떤 빵을 보고 할아버지는 무척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꼭 먹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빵집에 입장했다. 가족들도 할아버지가 드디어 입맛에 맞는 걸 찾으셨구나 싶어서 기뻤단다.


각자 빵을 고르고 음료를 시킨 후, 테이블 2개를 붙여서 대가족이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는 모두 빵과 음료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빵을 한입 베어 물었는데, 그 순간 할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갑자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이건 사기다!!!(C’est une arnaque !!!)”


할아버지가 먹은 빵은 앙코가 찰지게 들어있는 <단팥빵>이었다. 가족들, 특히 한국인들이 보기엔 빵도 고소해 보이고, 단팥 소도 넉넉하게 들어있겠다,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영락없는 초콜릿  (Pain au chocolat   쇼콜라)으로 보였다. 달콤한 초콜릿을 상상하고   먹었는데,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맛에 놀란 할아버지는 고함을 치고 말았고 가족들은 기함을 하고 말았다. 설마  속에, 검붉은 색의 이상하고도 맛없는, 끈적거리는 물체가 들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한국에서 즐겨 사용되나 서양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식재료가 의외로 무척 많다. 깻잎이나 고사리와 같은 채소가 그러하다. 서구권에서 깻잎은 독성 있는 식물, 고사리는 야생동물의 먹이로 여겨진다. 김이나 미역 같은 해초류도 마찬가지이다. 색이 검은 해초류는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물건으로 친다. (목욕용이라면 모를까.) 곡류 중에 대표 주자는 ‘팥’이다.


우리나라 음식에는 ‘팥’을 이용한 음식 종류가 상당히 많다. 단팥빵, 팥죽, 붕어빵, 팥고물 떡,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팥빙수, 팥 아이스크림이나 아이스바 등... 우리는 ‘팥’이라는 식재료를 무지하게 사랑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강도만큼 ‘팥’을 미워한다.


수년 전, 한국에서 이름난 빙수 브랜드가 프랑스에 진출했다. 다행히도 그 브랜드는 프랑스인들이 ‘팥’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팥 대신 과일이나 젤리, 초콜릿 등을 첨가한 메뉴를 개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팥빙수를
너희는 왜 안 먹니?
라고 진정 묻고 싶다.
“이건 사기다!”라고 외친
프랑스 할아버지께도 단팥빵이
정말 맛이 없었는지 여쭙고 싶다.


사실, 내 입에 맛있어도 상대의 입에는 거슬릴 수 있다. 맛이나 향기는 개인적 취향이 무척 강한 분야라, 부모 자식 간에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초콜릿을 상상했다가 입속에서 물컹하고 다른 맛을 느꼈으니 그의 순간적 쇼킹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쨌거나 난, 사기라는 소리를 들은 그 귀한 단팥빵 한번 먹어봤음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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