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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21. 2022

한국남자 이 한마디에 기죽은 프랑스 남자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의 이 한마디

30대 후반의 뱅상이라는 프랑스 남자는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 말속에 상당 부분은 자기 자랑이다.  


한 번은 모임 중에 그가 요즘 하고 있는 운동에 대해 일장 연설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요즘 철인 3종 경기를 하는데 말이지,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어쩌고 저쩌고~”

그의 말이 맞다. 아니, 어찌 보면 참 대단하다. 그게 거짓이 아니라 정말 철인 경기에 도전했다면 말이다.


달리기는커녕, 나는 요즘 걷기 조차 하지 않는다. 달리기, 걷기, 필라테스를 하겠다는 연초의 결심이 무색하게 집순이로 앉아만 있는 내게 철인경기가 다 웬 말이냐. 철인3종이 아니라, 작심3종이다.


운동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딱히 가로막을 이유도 없어서 잠자코 듣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까. 그들 역시 별 반응 없는 모양새로 보아, 뱅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멘탈이 아스트랄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점점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수영과 사이클 할 때의 자세며, 헤드폰과 이어폰, 그리고 유리로 된 물건은 지참할 수 없다는 규정, 중간중간 복장과 장비를 교체하는 시간까지 기록에 들어간다는 것까지… 사실 그다지 흥미롭진 않았다. 말하는 뱅상 본인이 제일 흥미로워하는 듯했다.


뱅상은 한국에서 실시하는 설악산 경기에 참석한 적도 있단다. 경기 시작이 새벽 5시였다고 했다. 그가 말하기 전까진 우리나라 설악산에서 그런 극한의 비인간적인 대회가 열린다는 걸 몰랐었다.


옆에 앉은 부인의 말로, 그 당시 시간이 한참 지나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는데도 남편이 결승라인에 보이질 않아 산속에서 죽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아니, 무슨 이런 사람들이 다 있지?


아니나 다를까, 부인의 말에 이어 곧장 뱅상이 설악산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서 구덩이에 처박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까지 듣자, 그의 이야기가 단순 허풍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 역시 뱅상의 말에 흩어졌던 멘탈을 주워 모으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반사적이고도 본능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에 기가 충천해지며, 그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생중계했다. 그리고는 더 신이 나서 자신이 구비했던 장비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경기중 반드시 목을 축여야 하는데, 페트병이 아닌 특수한 디자인의 물통이라고 했다.


이런 신기한 물건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 사진을 보니 장비충인 나는 왠지 그 물건을 등에 업고 산을 타야만 할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주머니에 물을 담아 백팩에 넣은 뒤 호스를 빼내어 입 근처에 두고 목마를 때마다 입만 갖다 대고 목을 축이는 장비 / 사진 출처 : Google


죽을 뻔했던 그의 경험을 전해 들으며, 그의 전문적인 장비를 눈으로 직접 본 사람들은 점점 진지해지다 못해 거의 그를 추앙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와, 정말 대단해!”

“오호, 엄청나구나!”

“어머나, 믿을 수가 없어!”


뱅상의 표정은 <우쭐> 그 자체였다. 그곳에 있던 어느 누구도 감히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을 듯, 숨 막히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을 무렵이었다. 근처에 가만히 앉아있던 한국인 김 씨가 입을 열었다.


“너, 총 쏴 봤어?”


“너, 무거운 전투화 신고 10시간 뛰어봤어? 물통 무게를 줄이려고 그런 장비를 쓴다 이거지? 한국 군인들은 온갖 무거운 물건을 넣은 40kg짜리 배낭을 등에 맨 채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추운 눈밭 위를 행군한단 말야.”


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듯 숙연해졌다. 프랑스인들의 표정은 존경을 넘어 쇼킹 자체였다. 뱅상은 갑자기 기가 죽어 버렸다. 난 김 씨가 그렇게나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국군 장병들까지…….




90년대 K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Y 씨가 병역기피 의혹으로 세간의 미움을 샀다. 38세가 넘으면 병역의무 이행과 상관없이 한국 출입이 자유롭다는 점을 들어, 그는 여러 차례 한국 방문 비자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얼마 전에도 그 문제로 법원에서 투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반 외국인보다 못한 처우라며 그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병역의무를 이행한 수많은 한국 남성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가 그런 발언을 할 수 없을 것이고 해선 안 된다.


대한의 아들들은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쳤다. 아들을 두고 찬바람 부는 골짜기를 뒤돌아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은 어머니도 있다.


글의 결론이 어째 예상과는 살짝 빗나갔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전쟁 중인 나라이므로, 병역 기피는 이유야 어떻든 용서하기 쉽지 않다.


“너 총 쏴 봤어”
김 씨의 이 말은,
남성의 흔한 허세에서 나온 말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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