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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Dec 15. 2022

월드컵 준결승전 앞두고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한.일전 만한 텐션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축구는 9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벌어지는, 합법적이고 신사적인, 그러면서도 야수적이고 다이내믹한 현대판 전쟁이다. 그 축구경기의 승부만큼은 누가 뭐래도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더구나 상대가 일본이라면, 우린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반드시 승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같은 이웃나라인데도, 한중전과 한일전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부담감과 분노의 총량이 다르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선조의 억울함과 울분이 DNA에 새겨진 채 고스란히 세대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한일전’¹만 생각하면 전 국민의 피가 뜨거워지다 못해 입에 거품을 물고 눈에 불을 켠다.


나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이다. 사실 오늘날 한국을 살아가는 국민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는 물론 전쟁이란 걸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다.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우리 민족이 얼마나 수모를 겪었는지, 말로만 전해 들었을 뿐,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가짐은 이렇다.


그래서 모로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을 식민 통치했다. 모로코와 알제리는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식민지였다. 프랑스는 군인들을 위한 성노리개로 알제리 여성들을 착취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안부’ 격인 셈이다.


프랑스의 식민통치 전략은 무척 악랄했다. 비슷한 시기의 영국 식민지와는 아주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영국이 통치했던 나라들은 철도와 학교 병원 등의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민간 항공기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통치했던 나라들은 그런 사회적 시설들이 전무하다. 학교라고 해봤자 프랑스 교육 시스템과 바칼로레아 제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프렌치 스쿨이 전부이다. 이것 역시, 프랑스 본국에선 무상교육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엄청나게 학비가 비싸,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학교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프랑스 식민 통치를 받던 대부분의 나라들은 현재 겉으로는 다 독립을 했다. 하나 아직도 알게 모르게 식민통치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제반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프랑스로부터 억압을 받은 모로코 사람들에게 우리 못지않은 ‘한’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착각이었다.




내가 겪은 모로코인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었다.


2006년 독일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당시, 나는 모로코의 수도 Rabat에 살고 있었다. 그 당시 "한국VS프랑스" 전을 앞두고, 주모로코 한국대사관과 L 기업이 협력하여, 수도 라바트에 있는 힐튼 호텔의 대형 세미나실을 대여했다. 한국 교민들과 모로코의 주요 인사들이 초청되어 빔 프로젝트로 경기를 함께 관전했다. 관전하는 중간중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화려한 호텔 뷔페식 음식들이 차려졌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었다. 초대된 모로코 상류층 인사들의 가족들도 함께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어이없게 프랑스가 선제골을 넣었다. 모든 한국인들이 실망스러워 탄식을 하는 가운데, 초대받은 모로코인들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환호하며 기뻐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내가 다 얼떨떨했다.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초대받아 고급스러운 호텔 음식을 먹으며 함께 경기를 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그 경기는 모로코 자국 경기도 아니고, 한국과 프랑스와의 경기이다. 더구나 프랑스는 모로코를 악랄하게 식민통치한 나라이다. 그런데 어찌 저들이 프랑스가 득점하자 저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기뻐도 초대해준 사람을 생각하면 기쁨을 자제해야 옳은 일 아닌가.


그들은 정말 대단했다! 식민통치한 나라를 응원하는 그들의 순수하고 이타적인 마음! 놀라웠다!




2022년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의 프랑스 VS 모로코 준결승전은 -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기준 - 앞으로 4시간 후면 경기가 개최된다.


내가 살고 있는 파리 11구는 모로코 타운이다. 벌써 지난주부터 술렁술렁 아주 난리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조신하게 집안에 기거하고 있다. 한일전과 비슷한 성격일거라고 여겨지는 "프랑스VS모로코" 경기이다 보니, 혹여 나갔다가 성난 군중들로 인해 낭패를 겪을까 봐서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왜냐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기필코 프랑스를 이겨야 한다는 마인드가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로코 출신의 코미디언인, 자멜 드부즈가 이런 말을 했다.


“경기를 보고 싶지만 두렵다.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경기하는 것 같다.
불가능한 딜레마다.”


만약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 코미디언이, “한일전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경기하는 것 같다. 딜레마이다”라고 했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들까?


난, 모로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만 그런가?



각주1. '한일전'과 비슷한, 세계적으로 앙숙인 매치들이 종종 있다.

‘프랑스VS모로코(또는 알제리)'가 그러하고, '독일VS폴란드'가 그렇다.

혹시 '영국VS인도'도 그럴까?

하지만, 그 모든 경기들이 '한일전'의 텐션에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역사의식이 투철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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