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렇게끼지……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처럼,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말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다.
가수들에게 암암리에 퍼져 있는 불편한 진실 하나가 있다. 본인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대로 자신의 인생이 흘러간다는 징크스가 그것이다. 슬픈 노래를 즐겨 부르는 가수에게는 슬픈 일이, 즐거운 노래를 즐겨 부르는 가수에게는 즐거운 일이 생긴다는 것은 모두가 쉬쉬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수가 신곡을 발표할 때, 수백 번도 더 연습한 후에 발표한다. 그러므로 노래 가사의 영향을 가수 본인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평상시 흥얼거리는 노래가 우리를 만들어가는데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역으로 우리가 원하는 바를 노래로 흥얼거리면 인생을 원하는 대로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국가(國歌)가 ‘애국가’인 것처럼, 프랑스 국가의 제목은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이다. 이 명칭은 마르세이유라는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다.
때는 바야흐로~ 시민 혁명군들이 파리의 튈르리 궁을 습격할 때였다. 프랑스 남쪽의 마르세이유라는 도시의 시민들이 혁명¹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로 올라왔다. 파리와 마르세유 간의 거리는 약 800km에 육박한다.
자동차나 기차가 없었던 시절, 그 먼 거리를 어떻게 왔을까?
힘든 일을 하거나 군중의 의욕을 고취할 때 음악이라는 것은 정말 유용하다. 노래를 부르면, 육체적 고통이 상쇄되기도 하고, 각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던 대중의 뜻이 한데 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용감하고 호전적인 군가를 부름으로써 마르세유 시민들은 사기가 충천한 군대로 변모했다.
그들이 불렀던 군가는 1792년 경, 어느 군인에 의해 탄생됐었다. 당시 프랑스는 이웃 나라인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때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Joseph Rouget de Lisle)’이라는 귀족 출신의 대위가 자신이 지휘하던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하룻밤 만에 군가를 작사 작곡하여 병사들에게 부르게 했다. 그는 음악을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았던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이웃나라를 무찌르기 위한 전쟁용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적 노래로 삼기에는 가사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그럼에도 군가는 국가(國歌)가 되었고, 마르세유 시민들이 불렀던 노래라 하여 <라 마르세예즈>로 명명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마치 하드코어 영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인 잔혹성이 느껴진다.
1절
가자, 조국의 자녀들아,
영광의 날이 왔노라!
우리에 맞서 저 폭군의
피 묻은 깃발이 올랐도다
들리는가, 저 들판에서
고함치는 흉폭한 적들의 소리가?
그들이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다
그대들의 처자식의 목을 베러!
후렴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대오를 갖추라
전진, 전진!
저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3절
무어라! 외국의 개떼들이
우리의 고향에서 법을 만들겠다고!
5절
…
이 피에 굶주린 폭군들,
…
이 호랑이들은 무자비하게
제 어미 가슴을 물어뜯을지니!
피 묻은 깃발, 흉폭한 적들의 소리, 처자식의 목을 베러, 더러운 피가 밭고랑을 적시도록 하라, 등으로 시작하여 뒤로 갈수록 점점 노골적이다.
배신자들, 야비한 자들, 외국의 개떼들, 피에 굶주린 폭군이 등장하며, ‘무자비하게 제 어미 가슴도 물어뜯어 버리는’ 등, 적국에 대한 증오와 호전성을 야기하는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40여 개국 중, 거의 3/4 정도나 되는 많은 나라를 오랫동안 식민 통치해왔었다. 또한, 아주 멀리 대서양 태평양 할 것 없이 세계 정복 야욕을 활활 불태웠다.
어디 그것 뿐이랴. 프랑스 군인들울 위해 위안부 격으로 알제리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착취를 일삼았다. 정복욕을 자극하는 호전적 내용의 국가(國歌) 영향이 아니라곤 볼 수 없다. 음악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적인 매개체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거의 독립했다. 하나, 여전히 프랑스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제대로 된 학교도 병원도 전무하고 자국 항공기도 없다. 영국이 지배했던 나라들과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나라 국민들이 학업을 위해 영국이 지배했던 우간다나 케냐로 유학을 가야 할 정도이다. 교육부문, 의약부문, 항공부문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석구석 프랑스 없이는 전혀 돌아가지 못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말하자면, 보이지 않게 식민통치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나는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프랑스 국가(國歌)는 앞으로
영영 부를 수 없을 듯하다.
각주1. 프랑스 시민혁명이 처음 일어났던 해는 1789년이다. 그 이후 혁명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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