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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l 18. 2022

바나나를 보며

과일 바구니 안, 바나나가 거무스름해지고 있다. 나는 바나나만 보면 온두라스 생각이 난다. 2013년 첫 방문을 앞두고 찾아본 온두라스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카리브해를 끼고 있어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해안이나 붉게 물든 석양에 홀로 선 섬의 풍경, 밀림의 자연을 낀 폭포와 빨갛고 노란 앵무새 등등. 시간이 있다면 일을 마치고 그런 자연 속으로 달려갈 수 있었으면 싶었다. 중남미 국가로의 첫 출장으로 온두라스에 갔다. 2013년 9월 첫 두 주간 주말을 끼고 머물렀지만, 치안이 위험하니 절대로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주의받았다. 

도착한 날, 또다시 주의를 당부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온두라스 옆에 있는 나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 살바도르에 출장 가 있던 세계은행 직원이 길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으니 결코 공적 업무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 외엔 호텔 밖을 나서면 안 된다는 경고였다. 남아공에 갔을 때 안전상 이유로 외부 출입을 금지당하긴 했어도 이렇게 살인까지 언급하며 경고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유엔이 2013년 당시 보고한 전 세계 범죄와 살인율에 따르면 온두라스는 10만 인구당 살인율이 90.4명으로 세계 1위인 곳이다. 

주말에도 꼼짝없이 호텔에 갇혀 지내는 동안 어째서 그곳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 되었는지 궁금해 그들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그들의 불행의 시작은 바나나였다. 미국에 처음으로 바나나가 소개된 것은 1870년이었다. 로렌조 다우 베이커 (Lorenzo Dow Baker)라는 선장이 자메이카에서 바나나를 가져와 보스턴에서 열 배의 수익을 남기고 팔았다. 바나나가 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수지맞는 장사임이 확인되자, 그는 당시 보스턴 출신의 철도 및 부동산 등 재계 거물이었던 헨리 메이그스 (Henry Meiggs)와 그의 조카 마이너 쿠퍼 키이스 (Minor C. Keith) 등과 손잡고 바나나 사업을 시작하였다. 

산업화에 대한 개념이 없던 중남미에 그들은 철도와 농장 개발 등을 명목으로 무상으로 땅을 차지하고 곳곳에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세웠다. 중남미인들은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미국은 미국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부패한 독재자와 정권을 옹호해왔다. 남미 언론은 이 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United Fruit Company)를 “el pulpo (문어)”라 부르며 남미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착취와 부패에 저항할 것을 일깨웠다. 곳곳에서 저항운동으로 파업이 일고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은 부패 정권의 탄압이 이어졌다. 이 중 1928년 12월, 콜롬비아의 해안가에 위치한 한 마을에서의 탄압은 수천 명을 살해해 바나나 학살로 불린다.

‘중남미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너무나 많이 닮았다.’ 마치 어릴 적 길가에서 하던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불쑥 한국의 기억이 고개를 들었다. 일제 강점기시 3.1 운동 때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20명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몇천 명인지 분명치 않은 것처럼 바나나 학살의 공식 사망자 수는 47명이지만 실제는 이천 명에 이른다. 햇살이 가득한 호텔 방에서 그들의 아픈 역사가, 여전히 힘든 그들의 현실이 마음 아파 하염없이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구의 언론은 중남미 가난의 원인을 끊임없는 부패 정권과 극심한 폭력, 빈부격차 등을 들지만 그 배후의 미국과 더 근원적인 원인인 자본의 탐욕은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와 자본의 일체성은 존 포스터 덜레스 (John Foster Dulles)와 그의 동생 앨런 덜레스 (Allen Dulles)를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존 덜레스는 법률회사 파트너로 일하며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를 대표해 1930년대 과테말라 및 온두라스 정부와 토지 무상이전 주요 협상을 체결했고 아이젠하워 수하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그의 동생 앨런은 그 회사의 이사회 일원으로 일하며 아이젠하워 정권의 CIA 책임자였다. 이 형제는 38년간 그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았다. 또한, 미국의 유엔대사였던 헨리 카보트 로지(Henry Cabot Lodge)는 이 회사의 대주주였다. 

그들이 빼앗은 땅과 착취에 대한 분노는 1940년대 과테말라에서 토지개혁을 내세운 민주 정권을 세웠지만, 미국이 1954년에 과테말라의 군부 쿠데타를 유도해 토지 재분배를 추진하던 대통령을 암살하고 과테말라엔 군부정권이 들어서 결국 1960년부터 수십 년에 걸친 내전의 늪에 빠졌다. 과테말라 뿐 아니라, 중남미 모든 나라에 동일한 역사의 반복이 이어졌다. 민중이 선택한 민주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 쿠데타에 무너지고 군사 독재 정부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이를 공산당 게릴라로 지목해 살해하고 내전을 거듭하였다.

‘이 또한 한국의 역사와 얼마나 닮았나.’ 또다시 그 두더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1945년 해방 후 남과 북이 나뉘어 있을 때 한반도 통일을 위해 애쓰던 김구 선생을 1949년 미국은 배후에서 조종하여 암살했지. 그 이듬해 남북은 한국전쟁을 시작해 38개월간 민주 세계를 표방한 미국과 서방 세력 대 공산 세계를 표방한 중공과 소련의 대리전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가 되었고.” 오래전 수업 시간에 들었던 한국사가 떠올랐다. 그렇게 휴전상태로 분단된 한국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여전히 고초를 겪고 수모를 당하고 있으니….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중남미 지배는 21세기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21세기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부패 정권에 대한 저항을 넘어 생존을 위한 환경문제까지 더해진다. 바나나 산업은 한 작물만을 지나치게 재배하는 모노컬처(monoculture)로 작물의 병충해나 토질의 악화를 유발한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과도하게 살충제를 쓰고 토질이 악화되면 버리고 삼림을 파괴해 또 다른 땅으로 옮겨간다. 파괴된 삼림으로 인해 홍수 등 자연피해에 더 쉽게 노출되어 악순환이 점점 깊어진다. 2013년 온두라스에 갔을 때 예전에 대통령 궁이었다는 건물이 1998년 허리케인으로 물에 잠긴 뒤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남겨져 있었다.

이뿐 아니라, 바나나의 유통과정에도 상당한 탄소 발자국 (carbon footprint)을 남겨 환경 파괴의 큰 원인이다. 온두라스에서 환경과 민중을 위한 운동단체 인사들은 끊임없이 살해당해왔다. 2016년 3월 초에 온두라스의 환경운동 지도자 베르타 카세레스 (Berta Cáceres)가 군부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2009년 민주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정권을 그녀는 비난해 왔고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의 군부정권 지지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비난했었다. 그녀의 사망 기사가 나기 불과 몇 주 전, 2월에 다시 온두라스에 갔을 때 호텔 식당에서 미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의 무리를 보았던 터라 그 기사가 더 마음에 남았다. 

현재에도 전 세계 바나나 무역의 삼 분의 일 이상을 미국의 세 기업, Dole, Del Monte, Chiquita가 차지한다. 모두 남미에서 “문어”라 불리던 기업이다. 악명 높은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는 치키타 (Chiquita)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나나는 미국에서 가장 싼 과일이다. 파운드당 가격이 보통 다른 과일의  십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과일 바구니에 담긴 바나나를 볼 때면 나는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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