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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7. 2022

사진 수업

사진은 순간을 포착한다. 내게 사진은 순간의 기록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 혹은 장소를 사진에 찍어 남겼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그렇게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아이들은 “엄마는 왜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냐?”며 심통을 내기도 하고 사진을 못 찍는다고 타박을 하기도 했다. 또 가족을 두고 출장으로 여행을 다니며, 가족들과 나누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많은 사진을 찍으며 작품사진같이 멋지게 찍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람은 항상 있었지만 바쁜 일상에 사진을 배울 엄두를 내진 못했다.


대학 동문회에서 줌 미팅으로 사진 강좌를 시작하려는데 참석 희망 인원수를 확인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자마자 “저 관심 있습니다!”하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전엔 이런 강좌에 참석하려면 오가는 시간이 부족하고 참석을 다 할 수 없을 것이 뻔해 선뜻 신청을 못했었다. 팬데믹으로 갇혀 지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줌으로 만나기 시작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혹 빠지더라도 녹화된 수업을 보고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첫 수업이 있는 날 그 시간에 다른 미팅이 겹쳐 수업이 끝날 즈음에야 참석할 수 있었고, 다행히 녹화된 비디오를 보며 자습하여 첫 강의 내용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첫 강의의 핵심은 “빛이 없으면 사진은 없다”였다. 빛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천지창조를 생각했다. 엉뚱하게 창세기 1장 하나님이 천지에 명한 첫 말씀이 “빛이 있으라"였음을 떠올렸다. 첫 강의의 요점은 사진은 결국 빛을 어떻게 조절하고 표현하는가인데, 카메라에서 빛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ISO값, F값, 셔터 속도 (Shutter speed). ISO는 국제 표준화 기구(International Standards Organization)의 약자다. 내가 일한 금융분야에서 많이 보던 것인데, 사진을 배우며 카메라에 이 약자가 적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카메라 제조사들에 국제표준화가 적용돼 이 수치는 카메라 센서로 포착한 빛의 양을 확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수치가 커질수록 밝아진다. F값은 사람의 눈동자에 해당하는 카메라의 조리개 (Aperture)를 조정함에 따라 빛의 양을 조절하는데 조리개를 열수록 (F값이 작아짐) 빛이 많이 들어와 밝아진다. 셔터 속도는 찍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빛을 더 포착해 밝아지게 하는 것이다.

 

“사진을 전혀 모르는 사람과 초보자라도 사진을 배운 사람을 구분되게 하는 것이 뭔지 아세요?” 두 번째 강의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아웃포커스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입니다.” 아웃포커스 사진은 초점을 맞춘 대상 외에는 흐릿한 배경이 되어, 마치 해 뜨는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 초점을 맞춰 바다와 하늘이 경계가 없이 배경이 된 클로드 모네의 <해돋이>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심도(Depth of Field)를 조정함으로 가능한데, 심도 깊은 사진은 실제의 배경이 어떠하든 배경은 흐려져 초점이 된 대상이 도드라져 예술작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 심도 없이 모든 사물이 또렷이 드러난 사진은 배경이 지저분하면 산만하여 볼품이 없어진다. 


심도 역시 세 가지로 조절한다: F값, 렌즈 초점 길이, 피사체까지의 거리. F값이 작아질수록, 초점거리가 짧은 렌즈일수록, 피사체 거리가 멀어질수록, 심도는 깊어진다. 두 번째 수업부터 아웃포커스 사진을 다섯 장씩 제출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제출한 과제물을 함께 보며 깨끗한 배경을 잡는 법, 수직과 수평을 맞추는 것, 어떻게 깔끔한 테두리가 되게 하는가, 아웃포커스 영역에 반짝이는 물체가 있을 때 Bokeh (보케: 빛망울)을 만드는 법, 빛을 다른 각도와 강도에서 표현하는 법 등등을 배웠다. 하지만, 매 시간 강조되고, 가장 인상에 남는 한마디는 “예술은 발견하는 것. 사진은 관찰과 발견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열두 번 강의의 중간인 6-7주 수업을 합쳐 4월 둘째 주 토요일에 첫 야외 촬영을 했다. 여전히 코비드 팬데믹으로 세상이 정상화되지 못한 터라 마스크를 쓰고 메릴랜드 브룩사이드 가든 (Brookside Gardens)에서 만났다. 수강생인 여섯 명이 모두 “이런 곳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며 감탄을 했고 사진강사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잠시 벗고 입을 쩍 벌려 놀라움을 표현했다. “다양한 꽃들이 잘 조성돼 있고 작은 호수에 정자와 나무, 새 등 사진 찍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는 이 장소를 택한 것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전날 비가 많이 내린 데가 여전히 하늘은 찌뿌듯하고 중간중간 부슬비가 흩날리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운 멋진 날이었다. 

“꽃들이 이렇게 많은데 ‘아, 참 좋다'하고 지나가면 같은 곳에 다시 올 이유가 없죠. 하지만, 많은 것 중에 내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대상을 찾으려 유심히 보고 다니면 같은 곳에 매번 와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랑, 오렌지, 분홍, 자주 등등의 튤립을 피어 있는 첫 공간에 들어서 강사는 말했다. 커다란 튤립 옆에 몽우리가 열리지 않은 작은 튤립이 기대어 선 것을 가리켰다. 

“많은 꽃 중에 이런 꽃들은 어미와 아이 같죠?”   


나는 한번 다녀온 곳은 별로 다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도 반복되는 일은 질색이라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다. 사진을 찍어도 풍경이 다 들어간 것, 책을 읽어도 시대나 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경제 관련 서적을 주로 읽었다. 작은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나는 그날, 그 공원에서 카메라를 들고 배웠다. 초록 풀이 무성한, 평소 같았으면 스치는 눈길로 지나갔을 곳을 가리키며 다른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어보라고 한 곳에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말했다. “어머, 이건 ‘설렘'이라고 이름 붙일래요.” 서로 입 맞추려는 듯 서 있는 두 풀이 초점에 잡힌 아웃포커스 사진이었다.                                  

설레임, 포옹 & 사회

그렇게 나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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