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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7. 2022

작가 수업

워싱턴 D.C. 안에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GW) 대학이 있다.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후 워낙 많은 한국인이 동문인 곳이니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도 누구나 알 듯하다. 내가 근무하던 세계은행 본사에서 두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빨간 벽돌로 지어진 본관 건물이 있고 그 일대에 여러 건물에 캠퍼스가 나누어져 있다. 한국의 대학은 정문과 담장이 있어 대학의 공간이 구분되지만 GW 대학은 그런 경계가 없다. 이곳에서 매년 작가 지망생을 위한 무료 커뮤니티 워크숍을 한다. 제니 맥킨 모어 (Jenny McKean Moore) 기금으로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진행하는데 지원자는 작품을 제출하여 선택되어야만 참가할 수 있다.

 

GW에서 극작 (playwriting)을 공부하고 남편과 함께 뉴저지의 저지 시티 (Jersey City)에서 사회변혁을 한 경험으로 <2번가의 사람들 (The People on Second Street)>을 쓴 제니 맥킨 모어가 1973년 대장암으로 사망한 후 작가 양성을 위한 기금을 남겼다. 이 기금으로 1976년부터 GW는 중견 작가를 초빙해 2년간 교수직을 주고 그녀 이름의 첫 자를 따서 JMM 워크숍을 제공해 왔는데 지난 40여 년간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백 여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한다. 해마다 한 해는 소설, 다음 해는 시, 그다음 해는 논픽션 창작 (Creative non-fiction) 등으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내가 처음 알게 된 2015년에는 소설 부문이었다.


내가 어떻게 처음 이 워크숍을 알게 되었는지는 이렇다. 일상에 파묻힌 삶에서 숨이 막힐 것 같은 사십 대 중반에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끄적거리며 써오던 글을 워싱턴 문인회 공모전에 보냈다. 운 좋게 당선이 되어 문학과 글짓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차에 세계은행 내에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의 클럽을 찾아갔다. 세계은행엔 직원 수도 많고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아프리카 협회, 한인 협회와 같은 각 나라 혹은 지역별 클럽뿐 아니라 사진, 스키 등등 각종 취미 클럽이 있는데 그중에 작가 클럽이 있는 걸 발견하고 참석했다. 하지만, 처음 참석하고는 바쁜 일상 탓에 계속할 수가 없었는데, 몇 달 지나 그때 남겨놓았던 내 이메일 주소로 이 워크숍에 대한 정보가 날아왔다. 


2015년 여름에 이 워크숍 공고를 받은 후, 태어나서 처음 소설을 구상해 첫 열 페이지 정도를 써서 제출했다. 결과는? 9월 초까지 당선자에게 고지한 후 9월 둘째 주부터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였는데 9월 중순이 되도록 혹시나 공고 이메일이 정크메일로 빠졌나 싶어 매일 확인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설을 읽기만 했지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던 내가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쓴 글이었으니 돌이켜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게다가 무책임한 도전이기도 했다. 설사 당선이 되었다고 해도 당시 큰아이가 미국에선 대학 입시에 제일 중요한 해라는 고등학교 주니어였고 직장 일과 가정을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마치 홍역처럼 달아올랐던 호기심도 사그라들고 그 이후 몇 해동안 이 공고는 정크 메일로 빠졌는지 내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 여름, COVID-19 팬데믹으로 집안에 갇혀 모든 일상을 유지해온 지 반년이 다 되어갈 즈음 이 공고가 날아왔다. 게다가 이번엔 논픽션 창작이어서 마침 워싱턴 문인회의 연간 발행지를 위해 써놓았던 영문 에세이 작품으로 공모했다. 마감 하루 전날인 8월 21일에 보냈는데, 제대로 접수되었다는 짤막한 이메일조차 받지 못해 누군가 받기는 했을까 의아해하고 있었다. 9월 3일에 강의를 맡은 커터 (Cutter Wood)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수업은 9월 9일부터 16주간 이번 학기는 온라인 강의로 진행된다고, 수업 참여 여부를 알려주면 곧 상세한 내용을 보내겠노라며. ‘드디어 미국 대학 수업에 참여하게 되는구나!’ 한국에서 모든 교육 과정을 마친 나는 미국이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같은 영국 대학에서의 수업은 어떻게 다를까, 한 번도 경험을 해보지 못한 그곳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팬데믹 상황 탓에 비록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는 경험은 못 하지만, 한편으론 오가는 불편함이나 시간 소모를 줄일 수 있고 게다가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지원자들도 이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서부, 중부, 동부까지 다양하였다. 내가 논픽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글에 각 사람의 삶이 진솔하게 드러나기 때문인데 미국에서 한 지역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여러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커터는 수업에 앞서 수필 한 편과 커리큘럼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세이 쇼나곤 (Sei Shonagon)의 “혐오스러운 것들 (Hateful Things).” 전체 42 문단에 마지막 세 문단이 연결되는 것을 고려하면 자신이 혐오하는 39가지를 열거한 글이다. 

커터는 많은 글 중 어째서 이 글을 첫 읽기로 골랐을까? 어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미심장한 사건이나 사색을 담은 것도 아니고, 다섯 페이지에 걸쳐 ‘돌아다니는 쥐' 혹은 ‘꺄악거리며 시끄럽게 빙빙 도는 까마귀' 등등을 ‘아,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혹은 ‘징글스럽게 싫다' 등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모아놓은 글일 뿐인데…. 이 짧은 글을 읽고 고개가 갸우뚱해져 저자와 이 글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그 수필은 천 년도 더 전에 일본 여성 작가가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세이 쇼나곤은 966년에 일본 헤이안 시대 교토에서 태어나 1025년에 사망하였고 그녀가 남긴 책 ‘마쿠라노소시 (枕草子, 영어명: The Pillow Book)'는 일본 최초의 에세이집이라 한다.


그녀의 글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월터 아이삭슨 (Walter Isaacson)이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나오는 다빈치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계급이 지배하던 사회에 사생아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다빈치는 자연 속에서 그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쫓아 관찰하며 스케치를 하였다. 그의 스케치와 묘사가 담긴 노트북은 ‘인간의 관찰과 상상이 종이에 기록된 가장 놀라운 증거’라 불린다.

“딱따구리의 혀는 부리 길이의 3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두개골로 들어가 연골 모양의 구조가 턱을 지나 새의 머리를 감싸고 콧구멍까지 구부러진다. 긴 혀는 나무에서 벌레를 파내는 것 외에도 딱따구리의 뇌를 보호한다.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아댈 때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힘의 10배이나, 이 기괴한 혀와 구조가 그 충격으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쿠션 역할을 한다.”


어려서 한국에서 자라며 자연을 관찰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방대한 양의 학습을 효율적으로 요약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에 익숙하게 살아온 내게 다빈치의 이 구절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 무언가를 이렇게 집요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제까지 나의 글 읽기는 구체적인 부분은 자질구레한 것으로, 대충 넘기거나 아예 볼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겨왔다. 게다가 지난 이십여 년간 일해온 금융, 회계 분야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문서를 단시간에 요약하여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방안이나 결론을 도출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며 떠들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쑤시고, 수염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술잔을 옆 사람에게 넘기며 ‘더 마셔! 쭈욱 단번에 마시라고!’ 하며 소리치는 이들을 혐오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그것도 39가지를 묘사한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녀의 집요함이 다빈치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내게 싫어하는 것 혹은 좋아하는 것을 물으면 나는 열 가지나 답을 할 수 있을까. 


다빈치가 밀란의 한 사원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라는 일을 맡았을 때 그의 그림에 진전이 없자 그곳의 공작이 그를 소환해 추궁했다. 결국 그들은 창작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토론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다빈치가 말했다.

“때로는 천천히, 혹은 멈추거나 지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아이디어에 간을 하지요. (marinate) 직관은 영양을 필요로 합니다. 최고의 천재는 때로는 가장 적게 일할 때 최상의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아이디어와 그가 지닌 개념의 완전성에 사로잡힌 후 그것에 형식을 부여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렇게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읽고, 쓰고, 일하는 곳에 들어선 것이다. 


https://english.columbian.gwu.edu/jenny-mckean-moore-profess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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