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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30. 2022

쉼, 그리고...

여는 글

40대 즈음에 이르면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슬픔이 몰려온다.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확실한 재능을 발휘해 자신이 누구인가 명확히 알고 살아가는 예외적인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나같이 평범하게 부모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사람은 대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매일매일의 삶에도 밤과 낮, 하루 세끼를 먹고 활동하는 생태 시간이 있듯이 긴 인생에도 그런 리듬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공자님의 나이에 대한 말이 수천 년의 세원동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여전히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15세에 공부를 하겠다는 뜻을 세웠고, 삼십 세에 이르러 일가견을 지니게 되었으며, 40세에 되어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50세에는 천명을 깨닫게 되었고, 60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편히 듣게 되었다.” — 《논어》 위정 편(爲政編)


성인이 된 후 시간은 내 것인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자라던 어린 시절엔 “백만장자가 되면 어떻게 살래?”하곤 친구들이 심심풀이로 묻곤 했다. 십 원짜리만으로도 길거리에서 군것질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 백만 원이란 건 하늘의 별처럼 아득한 세상 같았다. 내 어린 시절 밥상에서 밥풀을 그릇에 남긴 채 숟가락을 놓으면, 할머니가 일제 강점기 보리고개 얘기를 하시곤 했을 때 할머니는 다른 별나라에서 왔나 싶었는데, 백만 원이 닿을 수 없는 부의 세계처럼 느껴졌던 시절 얘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은 나를 내가 어린 시절 할머니를 본 것처럼 보지 않을까 싶다. 어린 시절엔 시간은 공짜로 무한정 주어진 듯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의 가치가 돈보다 훨씬, 아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돈은 내 노력으로 벌 수 있지만, 시간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옛말에 농담으로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깔린다”고, 생명을 연장하겠다고 수술을 받고 그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고 한 후 다른 연유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보며 인간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시간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경제 영어로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상품의 가격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선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것인데, 공급량을 자유로이 변경할 수 있는 재화의 경우 수요가 늘면 생산량을 늘려 가격 상승을 조절하지만 토지와 같이 공급량이 제한된 경우는 수요가 늘어도 공급을 확대할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가정과 직장일, 사람 관계도 어린 시절 친구부터 직장 동료, 결혼 후엔 양가 식구와 자식 등 시간의 수요는 급속히 늘지만 하루 24시간, 공급은 전혀 탄력성이 없다. 


게다가 삶의 어느 순간에 이르러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면 이 땅에서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한창 바쁘게 살아가던 30대, 대학원 친구 하나가 미국에 사는 내 집에 들렀었다. 미국에 가 살기 시작한 후 한국에서 학창 시절 친구가 찾아오기는 처음이어서 무척이나 반가이 맞았다.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그 친구는 육 개월간 미국에 연수를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도 볼 겸 들렸다고 했다. 정이 많던 그 친구는 낮에 시간이 나 D.C. 의 국립미술관에 들렀다가 내 생각이 나서 샀다며 자그마한 상자를 내밀었는데, 상자 안엔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오솔길에 소녀가 걸어가는 풍경을 그린 르느와르의 작품이 새겨진 나무 프레임이 들어 있었다.


그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고 몇 년 후에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친구 밤낮없이 그 회사 상장 준비한다고 일하다가 예비군 훈련 가는 날 새벽에 길에서 심장마비로 세상 떠났어요. 애 둘도 아직 어리고 안사람은 애들 키우느라 소득도 없는데, 일하던 회사에서는 직장이 아니라 예비군 훈련 가다 그랬다고 과로사가 아니라고 보상도 안 해 준다고…” 

“너 미국 와서 애들 키우며 네 일도 열심히 하며 이렇게 잘 사는 거 보니 참 좋다.” 잔잔한 목소리로 선한 미소를 띠며 내게 말하던 그 친구의 모습과 함께, 나도 이렇게 일하다가 언제 어디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세계은행 재무부서에서 일하며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중앙은행에서 외화자산관리에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밤낮없이 일할 때였다.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수레바퀴에 매여 살아온 나 자신에게 쉼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구약성경에서는 농작하는 땅도 칠 년에 한 번씩은 한 해를 걸러 쉼을 주어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하지 않았나.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사반세기 동안 일한 나는 적어도 이년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을까. 지난 2년간 내 삶의 쉼을 돌아보며, 미주 한국일보 주말 에세이와 워싱턴 문학 등 생각날 때마다 끄적거린 스케치와 같은 글들을 모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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