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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n 19. 2023

미궁의 늪에서

등의 살갗이 갈라지며 뾰족한 나사들이 솟아 나온다. 살과 뼈가 폭발하듯 부서진다. 대상포진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며 예방주사를 권고하는 TV 광고 장면이다. 광고의 마지막엔 “어린 시절 수두를 앓은 적이 있다면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이미 당신 몸 안에 있습니다. 50세가 넘었다면 대상포진 예방주사에 대해 당신의 의사에게 물어보세요.” 예전엔 무심코 보았던 이 광고가 며칠 전 대상포진 예방주사를 맞고 이틀을 앓은 후여서인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가 대상포진을 앓고 죽을 뻔했다며 백신을 맞으라고 권고해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소량의 균을 투여하는 백신을 맞고 이틀이나 누워있었다. 대상포진을 앓고 “아이 낳는 것보다 더 아프더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수두를 앓은 적이 없다면 몸 안에 바이러스를 보유하지 않아 절대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는단다. 왜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어린 시절 수두를 앓은 경우 그 바이러스가 몸 안에 잠재해 있다가 수십 년이 지나 대상포진으로 나타난단다. 몸의 면역체계가 약해진 경우 나타나기 쉽고 대상포진은 한번 앓는다고 다시 재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앓을 수도 있다 한다. 어린 시절 수두를 앓은 기억이 떠올라 버럭 겁이 났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아마도 네다섯 살 즈음이었던 듯하다. 어떻게 수두에 걸렸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온몸이 엄청 가려웠던 것과 엄마가 몸을 긁으면 곰보가 된다며 내게 소매가 긴 옷을 입힌 후 소매 끝을 동여매어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기억을 더듬으며 “엄마는 내게 수두 백신을 안 맞혔나? 수두는 백신을 맞으면 거의 안 걸린다는데 왜 난 걸렸을까?” 의아해졌다. 등 푸른 생선이 아이 뇌 성장에 좋다고 고등어를 뼈까지 갈아 전을 만들어 먹이고, 뼈 국물이 골대를 튼튼하게 한다고 사골을 가득 끓여 물처럼 마시게 한 엄마가, 자식이라면 잠을 설치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삶의 모든 것을 바친 엄마가 왜 백신은 안 맞혔을까? 내 궁금증은 점점 커졌다. 마치 미스터리의 답을 찾듯 나는 수두 백신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수두는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다다른 후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여러 바이러스를 옮겼는데 그중 치명적인 하나로 기록돼 있다. 처음 콜럼버스가 산살바도르 섬과 그 근처 Hispaniola 섬에 정착했을 때, 원주민인 타이노(Taino) 종족이 최소 6만에서 많게는 8백만에 이르렀는데, 50여 년이 지난 1548년에는 타이노 종족 인구가 5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한다. 프란치스코회 수사로 1529년 남미에 와 61년간 그의 여생을 멕시코에서 보내며 원주민의 삶과 문화, 역사를 기록해 최초의 인류학자라 불리는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Bernardino de Sahagún)이 남긴 “플로렌틴 코덱스 (Florentine Codex)” 책에 수두로 죽어가는 원주민의 삽화에 눈이 머물렀다. 어린 시절 내 온몸에 돋았던 붉은 반점이 떠올랐다.

1520년 4월에 스페인 군대가 현재 멕시코의 베라크루스 (Veracruz) 지역에 도착했을 때 수두에 걸린 한 흑인 노예를 데리고 왔는데, 두 달 후 스페인군이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 (Tenochtitlán)에 진입했고, 그로부터 불과 넉 달이 지난 10월 중순에 이미 5만에서 30만 명에 이르는 수도 인구의 절반이 수두로 사망에 이르렀다 한다. 수두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병이라니! 어떻게 스페인군은 멀쩡하고 원주민들만 그렇게 많이 죽게 되었을까?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s)>에서 어떻게 유럽이 세상을 정복하게 되었을까를 탐구하며 유럽인은 일찍이 가축을 길들여 정착해 사는 농경문화를 시작했고 가축에서 옮겨 온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저항력이 생겼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수두를 구별하는 자세한 설명을 제공한 최초의 과학자는 영국 의사인 윌리엄 헤베르덴 (William Heberden)으로 1767년에 “수두를 앓은 사람들은 다시 걸릴 수 없다"라고 기록했다. 20세기 초반에 헝가리의 소아과 의사인 제임스 본 보케이 (James von Bokay)가 수두와 대상포진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했고, 1950년대에 과학자들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분리하여 수두와 대상포진 예방 접종을 위한 노력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 후 이러한 질병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고 배포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려,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1995년에 최초의 수두 백신을, 2006년에 최초의 대상포진 백신을 승인했다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어렸을 땐 수두 백신이 개발되기 전이었던 것이다.

수두를 한번 앓으면 다시 걸리지 않는데, 그 균이 사람 몸에 수십 년을 숨어 있다가 대상포진으로 나타날 수 있고, 대상포진은 한번 걸려도 또다시 걸릴 수 있다니, 이 작은 세균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두 해 전 코비드-19라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온 세상이 혼돈에 빠진 후 여전히 삶은 미궁에 빠져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백신을 개발해 내었을 때만 해도 당장 미궁에서 탈출할 듯했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백신을 조롱이라도 하듯 바이러스는 변이를 계속하며 확산하고, 백신을 거부하며 “자유"를 외치는 이들은 늘어간다. 심지어 이들은 집단행동을 하며 급기야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수도로 꼽혀온 캐나다의 오타와에 대형 트럭들을 몰고 와 거리를 점령해 데모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기존의 시위와 달리 거대한 트럭에서 먹고 자며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는 이들을 해산시킬 방안이 없어 캐나다 정부는 그들의 집단생활을 지원하는 금융을 막는 초유의 결단을 내렸다. 그 금융의 많은 부분이 암호화폐로 이루어져 암호화폐의 거래까지 차단하자 미래지향적 정책과 산업을 육성해 온 캐나다와 미국의 곳곳에서 이에 대한 찬반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작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세균이 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한번 걸려도 다시 변이 된 바이러스엔 저항력이 없는 이 지독함에 당황한다. 이 균이 수두처럼 몸 안에 잠재해 있다가 수십 년이 지나 다시 어떤 형태로 변이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엔 목적과 의미가 있다 한다. 나는 미궁의 늪에서 지치고 허탈해진 마음으로 한 가지 확실한 내 기억을 붙잡는다. 어린 시절 수두가 내게 남긴 기억 - 엄마의 근심 어린 눈길과 사랑의 손길. 

(2022.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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