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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n 19. 2023

전운을 바라보며

“내꺼야!” 내 첫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낮잠을 자다 소리친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본질적으로 러시아의 것"이라는 푸틴의 말이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던 아이의 투정처럼 들렸다. 2011년에 몇 차례 키예프(Kyiv)로 출장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묵었던 호텔 바로 옆의 크고 작은 황금빛 돔이 햇빛에 반짝이던 성 미카엘 황금 돔 수도원 생각이 났다. 원래 그 수도원은 11~12세기에 지어졌는데, 1930년대 소련에 의해 철거되고, 수도원이 소장했던 지난 900여 년간 수집한 모든 문화재는 러시아 레닌그라드 박물관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도원을 둘러보며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는 한국인들에게 일본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본 점령 기간 동안 일본인들은 한국 문화재를 훔쳐 가거나 움직일 수 없으면 파괴했다 한다. 반짝이는 돔은 슬픔을 감춘 광대의 미소처럼 보였다. 수도원을 나서며 본, 입구에 있는 작은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그들의 역사는 더 가슴 아프게 남았다. 소비에트 연방 하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여러 차례 기근을 겪었는데, 그 기념비는 1932-33년 기근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굶겨 죽인다"는 뜻의 "홀로도모르 (Holodomor)"로 불리는 이 기근은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을 죽였다.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소련 정부가 자행한 민족 말살을 위한 기근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결코 독립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는 첫 번째 슬라브족 국가인 키이반 루스(Kyivan Rus)의 중심지로 10세기와 11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국가였다. 한국이 백제에서 건너가 나라를 이룬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듯, 우크라이나도 그곳에서 확장해 나라를 이룬 러시아에 18세기 후반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고 러시아 제국에 흡수되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의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는 짧은 독립 기간(1917~20년)을 달성했지만, 재점령되어 잔혹한 소련의 지배를 견뎌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지우고자 했다. 정체성을 지우는 것, 식민지 기간 동안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시도한 것이었다. 한국인들을 일본 문화에 흡수하기 위해 이름도 일본어로 바꾸게 하고, 한국 유적과 문화를 파괴하고, 한국인들을 강제노동과 성노예로 일하게 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본의 시도는 위안부를 부정하고, 한국의 독도를 그들의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 등 잘못된 가르침과 역사에 대한 기억을 통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슬프게도, 러시아는 잔혹한 스탈린주의 정권의 인종 말살 정책을 부인하고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지우기 위한 시도를 계속한다. 


내가 처음 미국 텍사스에 정착했을 때 아파트 단지 안에 사는 일본인 친구 몇 명을 사귀었다. 그들은 모두 매우 친절했고, 함께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우며 교제를 나누었다. 우연히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나라의 섬이라는 주제에 도달했다. 내가 독도라 부르는 한국의 섬을, 그들은 다케시마라 부르며 일본 섬이라 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타케시마가 우리의 섬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현대 우크라이나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창조물이다." 푸틴의 말을 들으며, 그가 텍사스에서 만난 일본인들처럼 어릴 때부터 배워 자신이 하는 말을 진심으로 믿는지 궁금했다. 


2022년 2월 23일, 우크라이나에 전운이 가득한 날 나는 햇빛이 내리비치는 창 옆에 앉아 뉴스를 들었다. 영국의 가디언지 사이트에서 키예프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반전시위를 하는 이들과의 인터뷰를 보았다. 깃발이나 포스터를 든 젊은이들이 북소리에 맞춰 구호를 외친다. 기자가 무엇을 외치느냐고 묻자 한 청년이 웃으며 "푸틴 후이로(Putin Huylo)- 푸틴 개자식이라는 뜻이에요. 푸틴은 미쳤어요. 만약 그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그것은 러시아의 종말이 될 것이고, 완전히 새로운 유럽, 더 안전한 유럽,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될 것입니다."


북소리와 구호가 귀에 익었다. 2011년 키예프를 방문했을 때 키예프 중심가에 위치한 독립광장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 시위는 폭력적이지 않았지만 경쾌한 노래와 구호를 외치는 커다란 소리가 도심 곳곳에 울렸다. 당시 친러시아의 야누코비치 신임 대통령이 반(反) 러시아로 오렌지 혁명을 이끈 전직 대통령과 전 총리를 투옥한 것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반러시아 시위는 몇 년 동안 지속되었고, 2014년 그들은 부패가 극에 달한 야누코비치를 추방했다. 가디언지의 기자가 우크라이나 청년에게 전쟁이 두려운지, 피난 계획이 있는지 묻자 그들은 주저 없이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했다. 그들에게 누가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미주 한국일보 주말에세이 2022.3.5일 자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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