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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n 19. 2023

조개

여름마다 한 번은 캠핑을 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세티크 공원으로 캠핑을 갔다. 이제 아이들은 다 제 갈 길을 가고 친구네와 우리, 그렇게 두 부부가 길을 나섰다. 친구네가 캠핑을 간다고 하니 주변의 친구들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말하더란다. “바닷가에서 뛰어놀 애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고생스럽게 캠핑을 왜 가요? 땡볕에 날도 더운데 기미만 생길걸…” 친구와 나는 머리가 하얘져도 아이들 같은 남편을 둔 덕분에 캠핑을 간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뒷자리에 여유롭게 앉아 베이브리지 (Bay Bridge)를 건너며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풍경을 즐기고, 캠핑장에 이르러 바다와 초원이 만나는 곳에 자유로이 풀을 뜯어먹는 야생말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은 공원 바닷가 갯벌에서 저 멀리 베이브리지를 바라보며 조개잡이를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짐을 챙긴 후 제일 먼저 조개잡이를 하러 나섰다. 두 대의 카약을 빌려 오렌지색 카약엔 친구네가 파란 카약엔 우리 부부가 나눠 타고 노를 저어 500미터쯤 나가 배에서 내렸다. 한여름 땡볕에 만의 물은 미지근했다. 발바닥이 부드러운 갯벌 흙에 닿자 뒤꿈치로 열심히 비비며 눌렀다. 이곳저곳을 눌러보고 몇 번의 실패를 거친 후 뭔가 확실히 발에 느낌이 왔다. 팔을 물 깊숙이 넣어 진흙 속에 숨어있는 조개를 잡아 올렸다. 

“와! 저 조개 잡았어요!” 저만치 있는 친구네에게 소리쳤다. 남편도 가까이 다가와 탄성을 질렀다. “우와! 진짜 크네!” 그렇게 우리 넷은 재미 삼아 조개 세 개를 건져냈다. 우리는 수확물을 캠프장에 가져와 해감하려 물통에 넣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 낚시 나가서 생선을 잡으면 같이 매운탕 끓여 먹자!” 다음 날 아침, 캠핑장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오션시티의 낚시터에서 두어 시간 낚시를 시도했지만, 망둥이 같은 우스꽝스럽게 생긴 녀석이 낚싯대에 한 번 걸린 것 외엔 물고기 구경도 못 한 채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매운탕 대신 조개 라면이 우리의 점심 메뉴가 되었다.


해감이 덜 됐을지 모르니 깨끗한 물에 조개를 먼저 끓이기로 했다. 조개 세 개를 냄비에 담고 물이 끓어오르자 몇 해 전 읽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의 ‘바닷가재 생각을 해라 (Consider the Lobster)’가 떠올랐다. 바닷가재 축제가 열리는 메인주에 가서 냄비에서 물이 끓어오르자 닫힌 뚜껑을 열고 도망 나오고자 하는 바닷가재들의 요란한, 처절한 몸부림을 하는 그 요리과정을 지켜보고 쓴 글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끓는 물에 넣어 서서히 죽이는 것에 대한 인간의 윤리에 질문을 던졌고, 그 이후 어떤 곳에선 바닷가재를 삶을 때 마리화나를 조금 넣으면 가재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2013년엔 독일에선 모든 물고기에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을 금하는 법령까지 생겨 이를 어기는 자는 벌금에 심한 경우 감옥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교육을 받은 독일인이 아직도 눈이 살아있고 꼬리를 움직이는 생선 위에 놓은 회를 본다면 까무러칠 일일 게다. 물론 이런 모든 생명에 대한 보호 운동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은 ‘생선이 정말 고통을 느끼는가?’고 묻기도 한다. 복잡한 과학적 실험과정을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작은 어항에 조그마한 물고기들을 기르며 먹이를 주는 내가 근처에 나타나기만 하면 입을 열며 다가오고 어항 청소를 위해 어항에서 잡아내려 하면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는 물고기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인지능력과 고통을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한다.


어릴 적 할머니의 잔소리로,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행한 행위를 다음 세상에서 고스란히 돌려받는다는 믿음을 갖고 살게 된 나로서는 조개를 담은 물이 끓자 마음이 아려왔다. 조개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꽉 닫고 있던 자신의 껍질을 열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다음 세상에서, 이런 하찮은 존재가 무슨 고통을 느끼겠는가 하며 나를 끓는 물에서 죽을 때까지 요리한다면 나도 이 조개와 같이 내 운명을 받아들일까. 나는 조개가 담긴 물에서 저만치 떨어져, 하얀 뭉게구름 아래 펼쳐진 모래언덕에 야생말들이 풀을 뜯어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얀 털에 밤색 줄무늬를 가진 새끼 조랑말이 꼭 닮은 제 어미를 따라 뛰어가고 있었다. 

(2022.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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