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윤정 Jun 19. 2023

오동나무

오동나무 한 그루를 얻었다. 내 허리쯤 자란 어린나무는 손바닥을 활짝 펼친 듯 초록 잎을 하늘거리며 내게 왔다. 함께 간 문우는 내게 “한국에선 예전에 딸아이를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대요. 아이가 자라 시집갈 때면 오동나무를 베어 가구를 만들어 보냈다지요.” 하며 속삭였다. 두 딸아이를 두어서 오동나무가 그리 친근하게 다가왔을까. 오동나무를 나누어 준 분의 뒤뜰에 서서, 커다란 어미 오동나무를 올려다보며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가지마다 달린 탐스런 보랏빛 꽃이 파란 하늘에 닿을 듯했다. “참 멋지지요?” 내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읽은 듯 뒤뜰을 지상낙원처럼 가꾼 그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해에 한국에서 태어나 30년을 그곳에서 사는 동안 오동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보았더라도 내 기억에 인식되지 못했으니 못 본 것과 다름없다 하겠다. 한국에서 본 키 큰 나무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단연 소나무다. 어느 곳을 가도 소나무가 우거져 있던 모습이 내 뇌리에 남아있다. 예전엔 아들을 낳으면 대들보감이 되라며 소나무를 심고,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니 아들을 선호한 문화가 나무에도 담겨 있었을까. 오동나무는 잘 자라서 십 년이면 베어 가구를 만들 수 있다니 내 아이가 결혼할 때쯤엔 가구는 아니어도 그 가지로 조그마한 장식품은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벌써 마음이 설렌다.


오동나무를 얻어와 새로 지어 이사 갈 집 앞마당 제일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심었다. 아이 손바닥처럼 자그맣고 보드라운 잎을 어루만지며 오동나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오동나무는 원래가 머귀나무로, 이 머귀나무의 머귀가 오梧, 나무가 동桐이기 때문에 한자로 오동梧桐이라 하는데, 한자 속뜻은 속이 비어있음을 뜻한단다. 한 블로거의 글 중 부모상이 나면 상주가 부친상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모친상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사용했다는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오동나무는 부드러운데 부드러운 것은 음양 사상에서 음을 가리키고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 지팡이를 쓴다 한다. 이 어린나무가 자라 아주 커다란 지팡이를 만들 때까지 엄마가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오동나무는 강도가 적당할 뿐만 아니라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도 적고 잘 썩지 않으며 불에 잘 타지 않고 뒤틀림도 적은 데다 가볍고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뿐 아니라 가야금, 거문고 등 우리의 전통악기와 생활용품 등 다양하게 쓰인다 한다. 이외에도 신기한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오동잎은 평년에 12개의 잎이 나지만, 윤달에는 13개의 잎이 나는데 이를 동엽지윤(桐葉知閏)이라 하고, 오동의 열매는 사람의 젖을 닮아 이를 동자(桐子)라 하는데 이는 어린아이인 동자(童子)와 같은 의미가 있고, 물가에서 자란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면 더욱 소리가 좋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부터 약초 및 목재로 이 나무를 사용했다니 수천 년에 걸친 사람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오동나무는 영어로 ‘폴로우나 (Paulownia)’라 하는데 1830년대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유럽에 처음 수입된 후 1840년경에 미국에 처음 들어왔다. 러시아 황제의 딸이자 네덜란드의 왕비였던 아나 폴로우나 (Anna Paulowna, 1795-1865)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 프린세스 나무로도 불린단다. 영어로 된 글들을 읽다 보니, ‘가장 혐오스런 나무 폴로우나 Paulownia (Princess Tree) on “Most Hated Plants” List’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척박한 환경에도 너무나 잘 자라고 급속히 번식해 토속 식물과 나무를 위협하니 이 나무는 베어버려야 하고 판매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백인우월자들이 이민자를 향해 외치는 음성처럼 들렸다. 지난 5월 14일, 10대 백인우월주의자가 흑인 밀집 지역인 뉴욕 버펄로시의 한 슈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한 참사가 떠올랐다. “백인, 유색인종에 밀려나...” 그의 범행동기와 과정을 쓴 노트에 담긴 글귀였다. 낯선 땅에 옮겨 심겨진 후 축 늘어진 잎을 달고 선 오동나무가 미국 땅에 아직도 뿌리를 내리는 중인 내 모습처럼 다가왔다. 다행히 ‘혐오스런 폴로우나 나무' 글 밑에 달린 댓글엔 잘 알지도 못하고 올린 이런 글은 삭제되어야 한다는 많은 이들도 있었다. 이 나무는 불에 잘 타지 않아 건축자재로도 훌륭하고 기타 등 악기 및 가구 제작에도 아주 좋은 재료가 되고 잘라내어도 다시 싹을 내 자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오동나무에 물을 주며 속삭여준다. 아름답게 자라 보랏빛 꽃을 활짝 피우렴. 네게서 작은 문갑도 나고, 네 자손을 잘 보듬어 키워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줄게. 어린 오동나무의 여린 잎에 맺힌 물방울에 햇살이 반짝인다.

(2022.5.21)

작가의 이전글 조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