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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n 20. 2023

날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적어도 금융의 세계에서는 크면 클수록 더 세게 떨어진다. 그리고 샘 뱅크만 프라이드는 극심한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2022년 11월 15일 자 한 기사를 읽으며, 대학 초반에 읽은 이문열의 소설이 떠올랐다. 책을 다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날개가 있는데 왜 날아오르지 못하고 추락할 수밖에 없는지, 날개만 펼치면 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젊은 나는 그땐 잘 이해하질 못했다. 


신문기사의 주인공은 샘 뱅크만 프라이드(SBF)로 11월 11일 파산신청을 한 FTX의 창업자이자 CEO였다. FTX는 SBF가 20대 중반이었던 201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시작한 암호화폐거래소로 그 가치가 곤두박질치기 전까진 320억 달러에 달했다. 그는 백인이지만 흑인곱슬머리 아프로 (Afro) 스타일로 독특함을 드러내고, 부모가 모두 스탠퍼드대학의 법대 교수에 막강한 정치력을 지닌 집안에서 자란 데다 그 자신도 상당한 정치자금을 기부해 왔다. 법규가 정비되지 않은 신생업계인 크립토계의 혜성 같은 존재로 각광받았고, 업계의 선두주자로 백기사로 불리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그였다. 

11월 초에 크립토계 뉴스를 다루는 코인데스크에서 FTX의 부실한 재정 상태를 드러내는 기사를 내보냈고, 처음엔 부인하던 SBF는 채 열흘도 되지 않아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의 추락 뒤엔 전형적인 금융 세계의 몰락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에서 회계 부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엔론(Enron)의 경우와 흡사하게 관계회사와의 부정 회계로 자산을 부풀리고 SBF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사적으로 회사의 돈을 수십억 달러씩 빼내었어도 내부통제가 갖춰져 있지 않아 파산에 이를 때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되돌릴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이문열 소설의 주인공처럼 추락하고 말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이문열의 소설 제목이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1926~1973)의 ‘유희는 끝났다(Das Spiel ist aus)’라는 제목의 시 가운데 한 구절이라는 것을 안 것은 세월이 한참 흘러서였다. 어쩌다 글을 쓰게 된 후로,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였다. 바하만은 그녀의 연인이었던 막스 프리시 (Max Frisch, 1911 ~ 1991)와의 사랑이 깨어진 후 이 시를 썼고 이 시의 모티브와 “추락하는 이들마다 날개가 달렸네요”라고 쓴 그녀의 시 한 구절을 잡아 이문열은 소설을 썼다. 이문열이 잡아낸 이 구절은 바하만이 그리스 신하 ‘이카로스의 추락’에서 가져온 것이다.


신화 이카로스의 날개는 날아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절제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 인한 추락을 잘 드러낸다. 신화 속 왕 미노스는 왕비가 황소와의 부정한 관계로 낳은 미노타우로스(미노스의 황소)를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들어가면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라고 했다. 미궁이 완성된 후, 미노스는 이런 비밀을 숨기기 위해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에 함께 가두었는데, 손재주가 비상한 다이달로스는 조그만 창을 통해 날아드는 새들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이어 붙여 날개를 만들어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아버지 미노스는 밀랍이 태양에 가까이 가면 녹는다고 충고했으나, 이카로스는 그 충고를 무시하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밀랍이 녹아 결국 바다로 추락하고 만다.


“추락하는 이들마다 날개가 달렸네요.” 바하만의 이 시구절은 인간의 욕망인 날개, 그 날개를 단 존재의 비상 없이는 추락이 없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반복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 막스 프리시와 같은 사람을 사랑했던 그녀는 잡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 자신의 욕망이 추락하는 날개가 되었음을 고백한 것일까. 서정시인으로 칭송받았던 그녀는 그와의 사랑이 끝난 후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했다고 한다. 


성찰 없는 삶은 추락으로 끝날 수 있다. 헛된 욕망을 위해 부질없이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고자 하는 건 아닌지, 매단 날개를 믿고 너무 날아오르고 있는 건 아닌지, 삶은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한다.  높이 날아오를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성찰을 위해선,  나무 끝자락에 앉아 바라보는 새처럼 멈춤이 있어야 한다. 찬 바람이 뺨을 스치고,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가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늦가을, 날개를 접고 잠잠이 바라볼 때이다.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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