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윤정 Jun 20. 2023

완벽한 봄날의 탐색

5월의 햇살이 부른다. 파란 하늘, 딱 알맞은 따스함, 살랑거리는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 어찌 밖에 나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당에 온 식구가 나가 햇살을 즐기는 동안 우리 집 개 ‘턱스’와 큰아이가 데려온 고양이 ‘슈리'도 밖에 나왔다. 턱스와 슈리는 파릇파릇 솟아난 잎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도 하고 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잔디에 등을 대고 비비며 온몸을 뒤틀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멋진 날이 내 생에 또 있으랴 읊조리듯, 그 둘은 초록이 무성한 마당 곳곳을 거닐었다. 


햇살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은 집안 오피스로, 아이들은 제각각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순둥이 턱스는 부르면 부르는 대로 집안에 따라 들어왔지만, 제멋대로인 슈리는 봄의 향기에 취해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 뒷마당이 숲으로 이어져 숲 안엔 뱀, 여우 등 온갖 동물이 나오는데 큰아이에게 어떡하냐고 물으니 “놀만큼 놀면 들어올 테니 걱정 마세요"하며 슈리를 그냥 두고 약속이 있다며 나가버렸다. 오후 햇살이 점점 길어져 가도 슈리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걱정이 되어 “슈리!”하고 외치며 밖으로 나서니 집 옆으로 여우가 한 마리 쓱 지나갔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큰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 앱으로 슈리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찍어서 보내라.” 큰아이는 슈리 목에 에어태그를 달아주어 휴대폰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곧 아이가 사진을 보내왔다.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숲과 맞닿은 땅에 나무를 밀어내고 새로 집을 지어 이사 온 지 일 년이 채 안 돼서인지 아이의 사진 속엔 우리 집은 없고 이웃집 옆 숲 속에 슈리가 있었다. “위치로 보면 우리 집 중간쯤인 것 같은데.. 혹시 곧잘 숨어 자곤 하는 지하에 있는 거 아냐?” 남편에게 지하를 확인해 보라 하고 난 2층으로 올라가 구석구석을 뒤졌다. 

결국 고개를 가로저으며 남편과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 수색을 계속했다. 남편은 연락처를 아는 이웃집 모두에게 슈리 사진을 보내 혹 보게 되면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는 집 앞뒤로, 이웃집 뒷마당에까지 들어가 슈리의 이름을 불렀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몇 번이고 큰아이에게 연락해 받은 사진엔 슈리의 위치가 변함이 없었다. “여우에게 물려가면서 목에 달린 태그가 집 근처 숲에 떨어진 건 아닐까?” 남편에게 말했다. “그 에어태그가 성능이 안 좋은 거 같아. 알려주는 위치가 실시간이 아니라 하루 전거인 것 같아.” 남편은 또 다른 이론을 내놓았다. 


날이 저물고 어두워진 후에야 둘째가 먼저 들어왔다. 아직도 슈리를 찾지 못해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나와 남편을 보고 둘째는 휴대폰의 전등을 켜고 숲으로 들어가려 했다. “슬리퍼에 반바지 입고, 숲은 안돼! 뱀도 있고..” 난 둘째에게 소리쳤다.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에 가득 차 나무에 기어오르다 떨어지기도 하고, 작은 벌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확 낚아채 먹어 치우기도 하고.. 나를 웃게 만들었던 슈리의 모습이 뇌리에 스쳐 갔다. “이제 그만하자. 슈리하고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지.” 남편과 아이에게 체념한 듯 말하고 난 집 안으로 들어왔고, 곧이어 남편도 들어와 덤덤히 말했다. “큰애한테 포기하고 들어간다고 하니 큰애도 별소리 없이 받아들이네..”


둘째는 여전히 포기할 수가 없는지 집 주변을 서성이다 들어와서는 “방금 전에 코요테 두 마리가 집 옆으로 지나갔어요”하고 외쳤다. 날이 어두워 밖은 위험하니 더 이상 나가지 말라고 이른 뒤에 난 침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뒤 둘째의 고함소리. “슈리! 슈리 찾았어요!” 한걸음에 달려 내려가니 곧 슈리를 품에 안고 둘째가 지하에서 올라왔다. “대체 어디서 찾았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나와 남편. “계단 밑 지하 창고 안에 있었어요. 문을 긁는 소리가 나 열어 보니 거기 갇혀 있던걸요.” 세상에! 어떻게 거길 들어갔을까? 그렇게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는데 야옹 소리도 한번 내지 않더니… 


둘째마저 찾기를 포기하고, 몇 달이 지난 후에 창고 문을 열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어느새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중년에 이르러 포기를 멈출 줄 아는 지혜라고 착각한 나. “우리가 이미 집안과 밖을 다 찾아봤다"는 나와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슈리를 찾아낸 막내. 그 포기하지 않는 젊음이 생명을 찾고 구한 것이다. 마치 죽은 듯한 땅을, 그 어둠을 뚫고 솟아나는 봄기운과 같은 젊음의 기상. 아, 그래서 사회는 젊어야 하고 나의 정신도 젊어야 한다. 나는 불굴의 의지를 드러내는 봄의 새싹 같은 둘째를 부둥켜안고 말했다. “땡큐!” 

(2023.5.16)

작가의 이전글 목표와 꿈의 차이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