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곳에서 괴로웠던 이유 1

나는 그곳에서 그들에게 인터넷중독자였고 싸가지 없는 10대였다.

by 박단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대한민국을 떠나 온 미국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낭만 있고 재미있고 멋진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LA 거리에는 노숙자들과 마약에 빠져 거리에 텐트를 치고 사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영어보다는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른 인종 또는 특정 사람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상상하던 캘리포니아는 야자수가 길쭉 뻗어있는 멋진 거리에 여유를 가지며 바다도 가고 정원도 가꾸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미국은 별 거 없었다. 미국 학교는 한국학교에 비해서 매우 지루했다. 매일 같은 시간표 매 교시마다 달라지는 학생들은 나를 더욱 적응 못하게 했다.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도 학교 수업을 듣는 것도 모두 힘들었다. 특히 영어 선생님은 애들과 내가 보는 앞에서 내가 이상한 아이인 마냥 말을 했고 내가 다른 학생에 비해 영어를 잘해 다른 애들을 내려다보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홈스테이 집은 엄마와 아빠가 한국에서 대학을 같이 나오고 미국에서 같이 유학생활을 했던 엄마와 아빠의 친한 형 누나 집에서 지냈다. 나는 그들을 이모와 삼촌이라고 부르며 초반에는 수다도 떨고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친해졌다. 그 집에는 책이 매우 많았고 나에게 영어를 빨리 익히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며 책을 추천해주셨다. 엄마가 나의 적응을 위해 2주 있다가 간 후 그들과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당시 엄마와 아빠는 이모 삼촌에게 나의 공부를 부탁했고 매일 단어시험을 보았다. 열심히 외웠어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날에는 내가 열심히 안 했다고 가정 아닌 확신을 가지고 나를 혼내셨고 나는 혼날 때마다 억울했다. 내가 그렇게 힘들 나날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공부 시간을 제외한 자유시간을 쪼개 영화를 매일 한편씩 봤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노트북을 내 방에 소지할 수 없어 거실에 있는 tv를 통해 매일 한편씩 봤다. 이러한 생활에 회의감이 들 때 나는 반항을 했다. 매번 단어를 외울 때마다 너무 힘들었고 혼날 때마다 죄인처럼 혼내시는 방식이 맘에 안 들어서 대들었다. 나는 할 말이 있으면 어른이든 친구든 토론을 하면서까지 내 의견을 내세우는 편이다. 이를 통해 배운 것은 내가 아무리 잘못한 게 없어도 가끔은 눈 감고 혼나야 하고 하지도 않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내 또래의 한국 아이가 내 주변에 없어 매일 폰으로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본 영화를 가지고 나를 인터넷 중독자로 취급하며 폰을 뺏었다. 내가 하고 싶은 취미들- 노래 듣기, 영화 보기, 친구와 영상 통화하기-은 모두 이모와 삼촌에게 공유되었고 오로지 엄마와 연락할 때만 방에 들어가 폰을 할 수 있었다. 내 방에서 폰과 노트북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엄마와 아빠에게 말했고 여러 갈등을 통해 나는 내 방에서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10시 이후에는 와이파이가 꺼진다는 조건과 함께... 그 이후부터는 혼자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2층 방에 혼자 있다 보니 밑층에서 불러도 잘 안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1층 벽을 크게 두들어서 내 방까지 들리게 하거나 내 방을 크게 노크하셨는데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 크게 벽을 두드리거나 내 방문을 두드릴 때면 크게 놀라거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냥 누군가 크게 문이나 벽을 두드리면 무서워했다. 내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다른 이유는 이모나 삼촌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아마존에서 구매해야 할 물품이 있어도 미루고 미루다가 밥을 먹을 때 내려가 부탁했고 배고파도 밑에 먹을 것을 가지러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간식이나 과일을 일부러 구매하시지 않으셨다. 초반에 나에게 냉장고에 있는 것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내가 청포도 한송이를 다 먹자 너무 많이 먹는다며 사주지 않으셨다. 한 번은 thanksgiving에 쓰일 오렌지 주스를 마셔도 되는 줄 알고 마신 날에는 나에게 정색을 하며 누가 먹으랬니 하며 혼내셨다.

나는 이 집에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모와 삼촌은 나에게 상처를 줘도 되지만 나는 이모와 삼촌에게 반박해서는 안됐다. 엄마와 아빠와 적어도 20년간 관계를 이어온 이모와 삼촌은 나에 대해 안 좋게 엄마 아빠에게 얘기했고 엄마 아빠는 내가 버르장머리 없고 거짓말이나 늘어놓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 취급을 하며 내가 미국 생활이 안 맞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엄마 아빠가 나에게 넣은 압박과 이모 삼촌이 나에게 준 정신적이 고통 때문이었고 결코 내가 나 스스로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앞서 설명한 이모 삼촌의 행동 또는 그보다 더한 행동에도 엄마 아빠는 여전히 이모 삼촌을 어느 정도 믿고 있고 내가 이모 삼촌이랑 안 맞았다고 생각하신다. 그래도 어느 정도 내 기분을 이해해주신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분들과 그 장소가 나에게 남긴 것은 나를 평생 괴롭힐 것만 같다. 어쩌면 너무 잊고 싶은 나머지 없었던 시간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시기를 잠깐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냥 내 10대의 잠깐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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