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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Mar 09. 2016

몽테뉴의 수상록

솔 프램튼

도서관에서 자주 책을 빌려다 읽는다. 철학책이 꽂혀있는 100번대 책들을 둘러보다가 유난히 몽테뉴에 대한 책이 많다는걸 알게되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왜 사람들이 이 사람한테 관심을 갖는지 궁금했다. 그중에서 솔 프램튼이 쓴 책을 빌려왔다.


내가 읽은 책 제목은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인데 제목에 입력이 안된다. 너무 길어서? 그런데 원제는 When I am playing with my cat, how do I know that she is not playing with me?이다. 저 두문장이 같은 말인가? 궁리해봐도 왜 같은지 모르겠다. 책 내용에 보면 프랑스어로 쓰여진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한글제목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저자가 저 제목을 고른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저 문장이야말로 사람들이 몽테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몽테뉴시절의 사람들은 유명한 철학자들은 더욱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데카르트가 그 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인간만이 특별히 사고 하고 인간만이 감정이 있고 꿈을 꾼다고 생각했지만 몽테뉴는 내가 고양이에게 같이 놀자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양이가 먼저 나한테 놀자고 하는 경우도 있고 놀다가 싫증나서 그만하자고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 놀이가 어떻게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놀고 있는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 라고 물었다고한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신대륙에서 원주민을 만났을 때 유럽인들은 유럽인만이 우월하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야만인이라고 매도하고 조롱하고 학살했지만 몽테뉴만은 그런 시선을 거부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 민족은 미개하지도 않고 야만스럽지도 않다. 그들의 관습이 우리의 관습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에게는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여론과 관습 이외에는 진리나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없다. 이 민족에게도 완벽한 종교, 완벽한 정부, 그리고 모든 사물에 적용되는 완벽하고 정립된 방식이 있다. 우리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열린 과일을  '야생' 이라고 하듯이, 이들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야생이다. 사실 우리가 야생이라 불러야 할 대상은 오히려 우리가 인공적으로 변형시켜 보편적인 질서로 부터 바꾸어 놓은 것들이다. "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아직도 종교전쟁을 한다. 한 집안내에서 종교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자기 집에서 맞서 싸울 이교도가 없으면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고 국가간의 싸움이 되기도 한다. 각자가 나름대로 완벽한 종교라는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반면 그런 사람들이 답답하고 지겨운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몽테뉴를 읽으면서 속으로 그럴거다. 에휴 700년전에 살던 사람도 깨친걸 아직도 못깨치고 이 난리부르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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