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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Mar 09. 2016

주부 인더 늪

이러지도 저러지도

이제 큰애는  대학생이 되어서 집을 떠났고 고등학생인 작은애는 아침 7시 반이 되기 전에 출발해서 10시반쯤 집에 들어온다. 남편은 그보다 일찍 나가서 6시반쯤 귀가한다. 나는 7시 반부터 6시 반까지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 11시간이 문제다.


큰애가 아직 두돌도 안 지났던 때였다. 나는 남편 밥 해먹이고 애 키우는 일이 그렇게 힘들었다. 내 평생 최저의 몸무게를 찍고 있었고 울고싶을만큼 피곤한 날들이었는데 오랜만에 통화를 하던 친구가 근황을 묻더니 자기는 그 당시 유행하던 외국계 보험회사 영업사원도 해봤고 지금은 남편과 학원운영을 하면서 치열하게 산다면서 나한테 너는 너무 시집을 잘가서 아까운 네 능력을 썩히구나..라고 했다. 아마 그 친구는 이제 20년 전에 나한테 했던 말을 잊었을거다.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했다. 남편이 생활비를 넉넉히 벌어오니 굳이 나가서 돈벌 필요없이 그저 애나 보고 그렇게 사는구나.. 였으니


속으로는  증명되지도 않은 내 능력을 썩히는게 아까웠지만 아들 키우는 일이 그렇게 힘든데 다른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한 십년 넘게는 애들 키우는 일만으로도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부모님께 애들을 맡기고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애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고 놀이방에 맡기는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들 살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왜인지..  그냥 그게 되지가 않았다. 그렇대도 남편이 생활비를 벌어오지 못했다면 맡기고 나갔겠지. 그리고 혹시 그 일을 잘 해내서 돈도 많이 벌고 직급도 높은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내가 뭘 놓쳤는지길이 없다.


작은애가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자주 날개달았다는 표현을 했다. 점심약속도 했고 쇼핑하러도 갔고 운동도 했다. 몇년은 정말 행복했다. 그러는 한편  벌써 교수가 되었다는 친구 소식에 악몽을 꿨다. 말그대로 악몽이었다.


얼마전 오랫만에 만난 삼촌이 니 딸은 지금도 징징대냐? 고 물었다. 그렇게 징징 대는 애는 처음봤다고 그런 애를 화도 안내고 달래던 너를 다시 봤다고했다. 우리 딸은 이제 징징 대지는 않지만 애가 쉽게 지쳐서 지금도 자주 힘들다고 한다고 했더니, 그게 같은거라고 했다. 그때는 말을 못해서 징징 댔고 이제는 말로 한다고. 그 때 깨달았다. 우리 딸이 왜 그렇게 징징댔는지. 왜 그렇게 달라붙고 업어달라고 하고 집에 가자고 했는지. 그때는 애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분하기만 했는데 지금보니 우리 딸은 원래 그렇게 에너지가 딸리는 아이였던거다. 3킬로도 안되게 태어났고 평생을 밥안먹는다고 혼나는 우리딸은  지금도 뷔페에 가면 초등학생이냐고 묻는다. 삼촌 얘기를 아빠한테 하니 하루는 엄마가 아빠에게 우리 딸이 밉다고 하더란다. 왜 그렇냐고 물으니 자기 딸을 너무 힘들게 하니 그렇다고 하시더란다. 그러니 우리 딸이 좀 심하게 그랬던는 말이고 내가 애 키우면서 그렇게 허덕댄 건 비단 내 무능력때문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런데 그랬던 우리 딸은 이제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니 나는 이제 그 시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매일 아침 나에게 새롭게 할당된 열 한시간은 마치 너무 예뻐서 어디서부터 먹어야 할지 당황스러운 고급케잌 같다. 아무데나 포크를 쑤셔넣어 그 예쁜걸 망가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안먹고 썩힐 수는 더욱 없다. 나는 포크를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매일 아침 식구들이 나가고 나면, 소중한 열한시간은 다시 오도마니 나를 쳐다본다. 이 아름다운 케잌을 아름답게 먹을 방법을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맛있게 먹는게 정답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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