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사항 없음
드라마를 보면 가끔 몇년후...하면서 화면이 바뀌고 등장인물들이 갈등상황이나 위기상황을 끝내고 웃으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 넘어간 그 세월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생각해봤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그들은 수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켜보는 우리는 특이사항이 없으니 테이프를 빨리 돌려서 보아야만 하지만 그걸 겪고 있는 본인들은 정작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정말 우리에게 해 줄 말이 없었을까? 혹은 견딜만 했던 것일까?
어쩌면 인생의 진짜 맛은 그 특이사항없음의 시간속에 있는건 아닐까? 남들은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하는 그 시간속에서, 내가 힘들게 변해야만 했고 성장해야만 했고 성숙해져야만 했던 그 강요의 시간속에서 나를 어떻게 어디까지 조련하는가?...가 진짜 내 인생의 숙제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시지프스의 돌덩이가 화강암인지 석회암인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내 고통이 남편의 바람때문인지 부모님의 학대 때문인지 내 스스로의 무능력때문이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돌덩이가 몇 kg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몇 kg이든 그걸 지고 언덕을 오르는 인간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 돌덩이를 지고 올라가다 가끔 돌덩이를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턱을 발견하고 즐겁고 감미로운 안식의 시간이 잠깐 있을 수도 있고, 돌덩이를 지고 올라가는 같은 심정의 동지를 만나 잠깐 위로 받았을 수도 있지만 시지프스의 인생은 '평생 돌을 지고 언덕을 오르다.'라고 한 줄로 쓰여졌다.
몇 년 후...의 그 몇년을 특이 사항 없음으로 간과한다면 우리네 인생도 결국 '아무개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혹은 타락하고 죽었다.'라는 한줄 인생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내 인생전체가 특이 사항없음으로 치워지는 건 아닌가?.. 섬뜩 할 때가 있다.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지만 적어도 나만은 내 인생을 그렇게 치워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나는 아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 특이사항없음의 시간속에서 내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