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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May 23. 2016

행복한 날에는...

두서없이 주저리

요사이 너무 핸폰을 들여다 보고 티비를 틀어놓는것 같아서 오늘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보통은 애 학교 보내고 천천히 시간 좀 보내다가 배가 고파지면 먹을 것 챙겨서 티비앞으로 간다. 가서 홈쇼핑을 본다. 어쩔때는 이건 꼭 사야해.. 하면서 눈에 불을 켜는 날도 있고 어떤날은 상도 안 물리고 다시 잠들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입맛이 좀 쓰다. 오전 시간이 다 가버려서다.


오늘 아침에는 핸폰도 안보고 티비도 안틀고 딴 짓도 안하고 싸늘한 아침 공기를 느끼면서 커피 마시고 멍때리고 앉아 있으니 행복한 날이구나 깨달음이 온다. 이렇게 환상적인 날씨가 일년에 몇 번이나 있을 것이며 식구들 안 아프고 지진나는 나라 갔던 아들은 드뎌 뱅기를 타고 오고 있는 중이고 지난주에 엄마가 보내준 4가지 김치 덕분에 밥 걱정도 안한다. 주말에는 옷정리를 하고 세탁기를 4번이나 돌리고 베란다 물청소하고 베란다에 쌓여있던 박스들은 어제 남편이 재활용하는 날이라고 다 갖다 버려줬다. 고장난 밥솥 스탠드 다리미.. 전부 버려줬다. 그랬더니 오늘은 정말 머리도 속도 시원하다.


친정 엄마는 나랑은 많이 다르시다. 손이 빠르고 솜씨가 좋으시다. 평생 얼마나 살림을 열심히 하시는지 나같은 엉터리 주부는 따라할 엄두도 안난다. 지난주만 해도 엄마는 배추김치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 그리고 매년 만드는 환상 딸기잼을 택배로 보내셨다. 너무 너무 맛있어서 밥을 2그릇이나 먹고 살찌게 생겼다고 투덜거리는 시늉을하니 행복해하신다. 엄마는 그게 낙이란다. 힘들게 하지 마시라고 아무리 말려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 또 보내고 또 보내신다. 엄마는 처녀적에는 친구랑 양장점을 하셨단다. 미군이 원조해준 밀가루 푸대를 빨아서 그 천으로 옷을 만드셨단다. 손이 야문 엄마는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하신다. 초등학교 다닐 때 까지 여름에는 엄마가 만들어 주는 원피스를 입었고 겨울에는 엄마가 떠주는 스웨터랑 바지를 세트로 입고 다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나혼자 오늘은 엄마가 간식으로 뭐를 만들어 놓았을까? 맞추는 게임을 했었다. 신기하게도 딱딱 맞았다. 고구마 뽀빠이 만두 쫄면 짜장면 콩국수 엄마는 뭐든 맛나게 만들어주셨다. 그중에서도 엄마 전공은 김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 말로는 어릴 적에는 내가 놀다가도 부엌으로 뛰어가서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고기 덩어리를 손으로 집어 먹기도 할 만큼 고기를 좋아했단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기를 안 먹었다. 내 기억에는 고기 먹어본 적이 없다. 집에서 불고기라도 해 먹는 날은 나는 고기 냄새때문에 같이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지 못했다. 창틀에 밥상을 따로 차려서 바깥에 코를 박고 밥을 먹을 정도였다. 나는 생선도 안먹었다. 그래서 엄마는 여름김치는 젖갈도 안 넣고 담아주셨다. 사람들은 대체 뭘 먹고 그렇게 키가 컸냐고 한다. 나는 콩나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엄마를 안 닮았다고 하지만 본 게 있어서 그랬는지 재봉을 배워서 옷을 만들어 입고 싶었다. 자켓이나 양장바지 같은거는 꿈도 안꿨고 간단한 원피스나 고무줄 바지 정도 만들어 입고 늙고 싶었다. 나는 원래 옷이 소박하다. 주말에 옷장 정리를 하다보니 정말 셀수 없이 똑같은 티셔츠만 한가득이다. 바지는 청바지만 입고 가끔 멋부리고 싶은 날은 원피스 정도 꺼내 입는다. 아무리 솜씨가 없다고 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고  집 가까운 학습센타에서 재봉 수업을 듣는다. 옷은 진도가 안나간다. 그래도 간단한 재봉을 배웠더니 소파쿠션 방석 베개잇을 수없이 만들었다. 속에 들어가는 솜모양만 다르지 만들기는 다 똑같은 것들이다. 아들방이 남는 바람에 거기다가 재봉틀을 펼쳐놓고 짬짬이 들어가서 법륜스님말씀 들으면서 재봉을 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힐링이다. 오늘은 옷장 정리하고 버리려고 내놓은 옷가지중에 몇가지를 추려서 옷본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화가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듯이 나는 아들방에서 재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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