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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Aug 03. 2016

나의 산티아고

가고 말테야

산티아고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들이 중학교때 집 가까운 도서관에서 여행 관련 책을 엄청 빌려다 읽을 때였다. 아들이 던져 준 노란표지의 책이었는데 읽으면서도 속으로는 '공부나 하지 이런 책이나 읽고 있네 지랑 무슨상관이라고...ㅉㅉ' 그러니 시큰둥했다. 그래도 산티아고가 뭔지는 알고 있으니 그랬는지 그 뒤로 심심찮게 여기 저기서 얘기도 듣고  다녀왔다는 사람도 만나면서 관심이 생겨 나도 책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작은 아이가 대학교 간다고 집 떠나면 나도 산티아고에 가기로.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책을 낸 사람들이 있다. 읽어보면 나이에 따라 성격에 따라 같은 길 다른 여행을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 독일 영화 '나의 산티아고'를 보고 왔다. 이런 저런 일로 시간을 낼 수 없었는데 오늘이 개봉 마지막 날이라서 부랴부랴 다녀왔다. 영화관은 북적북적했지만 내가 들어간 상영관은 텅 비어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뒤에서 누군가 잠 실컷 잤다고 했다. 나는 하나도 졸리지 않았고 여러 장면에서 마음이 울컥하기도 웃음이 터지기도 심하게 동감하기도 했다. 더욱 가고 싶어졌다. 다만 가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고행길이다. 그 길을 다 걸으면 무슨 잘못을 했든 용서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 길이 쉬울리가 없지...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 "침묵은 쉽다. 그런데 생각을 침묵하는 일은 어렵다." 아무리 혼자서 걸어도 머리속은 온갖 잡념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가끔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거나 처음 가는 길을 혼자 가게 될 때 아무 생각없이 편한 마음 일 수 없다는 걸 경험한다. 혼자지만 머리 속은 그 누구랑 함께 있을 때보다 시끄럽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렸을 적 생각을 많이 한다. 누군들 뒤돌아보면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주인공의 경우에는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살았다.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신은 있는지, 있다면 왜 엄마를 데리고 갔는지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았고 자기도 어려서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한채로 살아 왔지만 이제 어른이 되어서 어린 자신을 떠올려보면 눈물이 터질만도 하다. "너 힘들었겠구나.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용케 잘 이겨냈구나. 너는 네가 뭘 이겨내고 있는 지도 모르고, 왜 힘든지도 모르고,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채로도 잘 컸구나. 가엾다 그리고 장하다."


내가 그 길을 걷는다면 나는 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사는 동안 가장 힘든 순간이 떠오를 테고 사는 동안 가장 잘 못 한 일이 떠오를테고 그 두 순간이 같은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될테지. 나도 그 때는 내가 뭘 이겨내고 있는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무슨 의미가 되는지, 내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실은 아직도 잘 모른다. 가장 힘들 때 가장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러니까 산티아고에 간다면 그 생각을 많이 할테고 어리숙했던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겠지. 그러고 나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늙어갈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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