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양파다.

by 김주부

사과는 껍질을 까면 맛있는 알맹이가 나온다.

양파는 껍질을 까도 알맹이가 없다.

또 다른 껍질이 나온다.

우리는 그 껍질들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그것이 알맹이였음을 깨닫는다.


사는 동안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그 후에는... 혹은,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기만 하면 그 후에는...

진짜 좋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런데 사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밤늦게 공부하던 날들도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에 갈 만큼 크기 전에 옹알이를 시작하고 걸음마를 떼던 그때도 소중한 인생이었음을 깨닫는다.

양파껍질이 알맹이였던 것처럼 내가 살아내고 있던 매일이

이미 진짜 좋은 인생이었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글쓰기 특강이 개설됐다. 며칠 전 첫 번째 수업에 갔을 때 교수님이 내주신 숙제가 있었다. 그 숙제를 해서 제출한 내용이 윗글이다. 평소 자주 가던 도서관에서 이런 수업이 있다고 할 때 글쓰기 수업이라는 걸 알기도 전에 이미 나는 신청할 작정이었다. 요즘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기대 없이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서도 자꾸 수업내용이 생각이 나고 굳이 할 필요 없다는 숙제를 해 볼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밤 12시까지 마감인 글을 써서 냈다.


2025년 트렌드 워드 10개 중에 하나가 '아보하'다. 아주 보통의 하루. 몇 년 전부터 자주 언급되던 소확행이 인스타 과시용으로 변질된데 대한 반박으로 나온 단어라고 한다. 샤넬 립스틱이 소확행이라면 건강치약이 아보하란다. 내 건강을 지키지만 입냄새를 하루종일 자랑하고 다닐 수는 없다고 한다. 행복하기 위해 애쓰고 멀리 가기보다는 그저 무탈하고 안온한 하루하루가 아주 보통의 하루인 거다.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하루하루가 아보하라면 좋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무사히 지나가는 일상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는 아침부터 한숨이나 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금의 노력이 모여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김설 ,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트러블쟁이가 쓰는 약 같은 화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