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가와 보조작가의 일상 - 미팅편
2025년 6월 9일 미팅 가는 날, 블로그에 썼던 일기
보통 우린 미팅을 가면, 내 차를 가지고 내가 운전해서 간다.
보조작가는 옆에서 미팅 상대에게 몇 시에 도착하는지, 긴급 연락, 가방에서 립밤 꺼내주기, 네비 꺼지면 다시 키기, 파란불 됐을 때 말해주기, 길에서 빌런 만났을 때 같이 쌍욕 박아주기, 운전할 때 안 심심하게 쉴 새 없이 떠들기, 네비 보면서 길 같이 찾아주기 등 다양한 일을 한다.
미팅에 가기 전, 나는 개를 키우기 때문에 개를 맡겨야 한다. 그래서 우린 개를 맡기는 곳 앞에서 만난다. 보조작가 집에서 도보로 몇 분 안 걸리는 거리이다.
미팅은 주로 홍대, 강남, 여의도 등에서 이뤄지는데
오늘은 상대적으로 가깝지만 막상 도착하면 운전하기 개같은 홍대에 당첨되었다.
그러나 강남 갈 때보다 늦잠자도 되기 때문에 둘 다 컨디션이 좋았음.
홍대 최고.
보통 미팅가기 전에 우린 커피를 산다.
개 맡기는 곳 1층에 자주 가는 저렴한 동네 커피숍이 있기 때문에.
우리 보조작가는 잠이 매우 많은 타입이라
종종 미팅가는 날에 늦잠을 자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매우 신기하게도... 미팅엔 절대 늦지 않는다.
참 신기하다.
다만 본인은 1시간 전에 일어나려 했는데 20분 전에 일어났다든지
뭐, 그 정도이다.
여기까지가 사전 정보...
우리집에서 합숙 작업하고 같이 출발하는 날엔
어차피 둘 다 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커피를 준비할 수가 있다.
집에 커피 머신이 두 대나 있기 때문에...
그럼 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아직 잠에 덜 깬 채로
몽롱한 녀석에게 "커피 내려봐."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그녀는 열심히 커피를 내린다.
하지만 각자 집에서 출발할 때면
개 맡기는 곳의 주차장이나 1층 카페에서 만나야 되기 때문에
내가 미리 커피 가져간다고 말 하거나, 카페에서 커피 사놓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보조작가가 지금 일찍 일어났는지,
아님 자기 계획보다 늦게 일어났는지 확인하며
커피를 사오라고 시키려 했는데 너무 귀찮은 것이다.
그래서 그냥 텀블러에 물만 받았다.
보통 커피를 담아갈텐데 오늘은 참 이상하게 물만 담아가고 싶은 것이다.
개 맡기러 가는 길에 난 부지런히 기름도 채우고 편의점에 들러 살 것도 사는 등어
젯밤에 '가는 길에 해결해야할 것들' 리스트를 착실히 수행.
이후 개 맡기는 곳에 도착. 그리고 그 앞에서 보조작가를 마주쳤다.
내 동선을 정확히 파악한 녀석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난 그냥 건물 1층이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ㅋㅋㅋ)
근데 녀석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오 커피 사왔네?!"라며 일단 개를 맡기고 나와
다시 주차장으로 가는 엘베를 탔다.
이후 대화는 아래.
나 : 널 좀 믿을 걸. (커피를 보며)
보 : ?! 작가님도 커피 사셨어요?
나 : 아니. 물만 담아옴. 오늘 뭔가 물만 담고 싶긴 했음. 기분이...
보 : 근데 뭐가 절 믿어요?
나 : 난 니가 늦잠 잤을 확률이 높을 거라 생각해서 커피 좀 사놓으라고 연락을 안 했지.
보 : 그럼 오히려 절 믿으신 거죠.
나 : 왜?
보 : 제가 평소에 하는 게 늦잠이니까요?
나 : 아. 그럼 니가 날 배신한 거네 (ㅋㅋㅋ)
보 : 아. 그러네 (ㅋㅋㅋ) 내가 일찍 일어났으니까.
아무튼 둘 다 커피를 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의 대화는 첨예하게 흘러갔기에 이 기록을 여기 남긴다.
재밌었다.
돌아오는 길에 도로에 빌런이 많았다.
화가 쌓여가던 나는 옆에서 신나게 자신의 덕질 라이프를 떠들고 있던 보조작가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앞에 차가 깜빡이도 안 키고 차선 변경을 해서 내가 있는 차선으로 들어왔다.
거기까진 참고 계속 "어"하며 보조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 한 번 더 깜빡이 없이 다른 차선으로 또 이동하는 것이다.
거기서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욕을 박으며
'손가락 부러진 거 아니면 깜빡이 좀 켜라'라며 급발진 멘트를
약 1분(체감상) 정도 날렸다.
보조작가는 내 급발진에 미친 듯이 깔깔 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보조작가들은 내가 화를 내면 좋아한다)
이전 보조작가의 말로는 내가 화를 내는 게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분노하는 게 웃기다'가 이유였음.
(물론 본인한테 화내는 거 말고)
그래도 잘 도착했다. 오늘은 참 괜찮은 날인 것 같다.
주차장에 세 번 방문했는데, 세 번 다 한 번에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