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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Apr 16. 2020

나의 인생 돌아보기

말레이시아에 적응하기 - 10세에서 14세까지 (PART 5)

내 첫 현지인 친구는 이름이 파라였다. 우연하게도, 지금 나의 가장 오래된 친한 친구 이름도 파라다. 게다가 알게 된 지 이제 2년 정도 되어가는 새 친구 이름도 파라다. 크하, 이 참 우연이란 재미있다. 아니, 우연을 빙자한 무의식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말레이, 인도, 파키스탄 계열의 가족 태생에 무슬림이며 국적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영국이다. 어릴 적 다양한 환경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문화적 다양함을 자연스레 선택하고 지향하도록 성장한  같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유치한 건 당연한 거고,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 등교한 첫 초등학교의 유일한 외국인으로서 놀림도 당하고 따돌림도 당했다. 아이들은 한국어나 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내게 '어이, 일본어 해봐!'라며 놀렸는데, 일본어 못한다고 하면 '너 일본 사람 아니야?' 되물었고, 가라테 할 줄 아냐며 가르쳐달라는 애도 있었고, 집에 가는데 쫒아오더니 갑자기 앞질러서 길바닥에 절을 하며 '너희는 이렇게 인사하지?' 하는 애도 있었고, 한 번은 남동생이 반 친구랑 싸우고 내가 불려 갔으나 내가 말이 안 돼서 동생의 입장을 설명을 못해서 남동생이 잘못한 것처럼 몰아세워진 적도 있었고, 미술 수업 때 다른 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내 책상을 기웃거리며 원숭이 구경하듯 보고 가는 경우도 있었고, 가끔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고 인상을 쓰고 싫다는 표정을 짓는 애들도 있었고, 가지가지 애들이 있었다. 그땐 참 힘들었는데, 다 서로 문화와 언어를 몰라서 생긴 일들이라고 본다. 그땐 오늘만큼 정보전달이 쉽지 않았고 국가 인지도도 낮았고 해외여행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가족이 가진 기존의 문화와 언어 외에 다른 여러 형태의 문화와 언어를 접한다. 말레이어를 쓰는 친구, 중국어를 쓰는 친구, 힌디어를 쓰는 친구를 항상 만나고 사귀었고 수업에 영어, 말레이어는 기본이고 각각 제3외국어를 선택해서 공부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천주교, 힌두교, 도교, 등으로 인해 국경일도 다양했는데, 무슬림이 단식을 실천하고 맞이하는 축제 Hari Raya Puasa, 힌두교인들이 갖가지 몸치장과 피어싱을 하고 행진을 하는 공휴일 Thaipusam, 컬러풀한 파우더를 서로 뿌리며 비시누 신을 기념하는 홀리 Holi 축제,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의미의 람신을 기리는 촛불 축제 Diwali, 중국계는 우리와 비슷하게 설날 공휴일을 보내고,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Moon Cake Festival중추절도 기념하는 등, 일 년 내내 정말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역사와 배경을 알게 되면 각각 집단이 가지는 특이점, 믿음이나 가치관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알면 알수록 상대에 대한 자각이 생기기 때문에 배려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미 각각 태어나면서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배경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파라는 항상 내 옆에 앉았고 푸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통통한 체구, 서구적인 이목구비에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였다. 내 기억에 파라는 학교에서 친하지 않은 아이가 없었다. 껄껄 웃는 게 남달리 성숙한 느낌이었다. 공부엔 좀 엉성해서 선생님께 좀 혼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을 정도로 참 여유로운 친구였다. 곧이어 파라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아이들도 점점 내게 다가왔고 공휴일, 생일, 방학 같은 기념할 날에 나를 집으로 초대를 해주었다. 어머니가 센스 있게 준비해주신 작은 선물들은 아이들의 부모님도 기쁘게 해 주었고 점차 나도 아이들을 내 집으로 불렀다. 내 집안 모든 것을 신기해하던 아이들은 한국 음식도 곧잘 먹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등 아이들의 종교에 따라 피해야 할 음식을 빼고 식사를 준비해주신 어머니는 남은 한국 요리를 잔뜩 담아서 아이들의 가족에게 보내주시곤 했다. 그러면 반드시 아이들은 내게 자신의 가족이 주는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중 뭔지 모르는 것들도 꽤 있었는데, 대부분 음식이어서 난 다 잘 먹어치웠다.


그렇게 점점 익숙해져 가는 학교 생활 덕분에 공부도 재미가 생겼다. 게다가 선생님이 우연히 내 노랫소리를 들으시고 학교를 대표하는 합창단에 넣어주셔서 더 활발한 학교 생활이 이어졌다. 학교 기념일에 무대에도 오르게 되자 되려 동네에서 나를 모르면 간첩이 되는 날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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