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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Apr 26. 2020

나의 인생 돌아보기

말레이시아에 적응하기 - 10세에서 14세까지 (PART 6)

학교 행사에서 한복을 입고 '위 아 더 월드' 합창을 한 후부터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게 관심을 보여주자 나도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생겼었다. 이때가 바로 이성에 눈을 뜬 시기라고 본다. 지금 가만히 돌아보니 그 아이는 내 아버지와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안경에 큰 덩치에 까만 피부에 언변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잘생긴 모습이? 이렇게 보면 프로이트의 분석처럼 인간의 어릴 적 자아는 정말 많은 것에 영향을 주는듯하다.


학교에선 왜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해 이때부터 가르칠 시도조차 하지 않는지 아직도 참 의아하다. 정말 매우 아주 중요한 인간의 발달 과정에 필수적인 공부인데 말이다. 이 교육의 부재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가져오고 만다. 이성은 중요하고 감성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교육 역사가 세계 어디나 팽배하기 때문이다. 점수나 시험으로 매길 수 없는 부분이라서, 총량 또는 세분화하기 여려워서, 객관화 또는 일반화할 수 없어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도자를 훈련하거나 만들기 어려워서, 개인별로 일일이 코칭하고 관리하기 힘들어서, 등등 이유는 많다. 그리고 어렵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시도는 해야 하지 않나? 어떤 교육이든 당연히 처음엔 커리큘럼도 없고 지도방식도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가족 안에서, 친구들을 통해서, 잡지나 서적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해 배운다. 전문가의 지식을 찾아내고 이해해서 본인의 삶에 적용하기까지 참 많은 오류를 범하고 상처를 입고 만다. 너무나 많은 틀린 상식과 정형화를 물려주고 재생산하는 구조 안에 갇혀서 말이다. 에휴...


초등학교 6학년에 첫사랑을 시작으로 다양한 감정도 생겨났고 더 복잡해진 인간에 대한 사고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말레이시아 아이들은 정말 솔직했고 당당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표현하는 편이었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부끄러울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알게 되면 주변 모두 함께 기뻐해 주고 신나는 그런 분위기였다. 즉, 계산이란 걸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 어느 누구도 비판하거나 억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플이 되어 학교를 같이 오붓하게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고 괜히 비극적으로 감정을 서로 자극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못 얻어도 그렇게 크게 절망하지 않는 편이었다. 기회는 아직 많다는 것을 아는듯했다.


그에 비해 나는 좀 드라마틱했다. 한 곳에 머물러 오랜 시간 동안 살아갈 아이들에 비해 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는지, 이동이 잦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격해져서 그랬었는지, 부모님의 격렬한? 갈등 관계를 자주 목격해서인지, 타고난 유전자가 열정적이고 감성적이어서 그랬는지, 여하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는데, 아버지는 건설회사를 그만두셨다. 뭔가 다른 사업을 추진하셨는데, 그 이유에서인지 쿠알라룸푸르에 적응한 지 2년이 되어갈 때쯤 어렵게 시험을 치르고 내가 현지 중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말레이시아 남부에 있는 도시 조호르바루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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