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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Jun 05. 2020

나의 인생 돌아보기

싱가포르에 적응하기 - 15세에서 21세까지 (PART 2)

싱가포르 중학교에 적응하면서 주말마다 가족과 한인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내 기억엔 이때부터 아버지가 우리를 데리고 더 열심히 교회를 다니셨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다 네트워크를 위한 전략이셨던 것 같다. 전에 말했듯이 싱가포르 한인 사회는 크지 않았고 조금만 지나면 거의 모든 사람을 알 수 있었기에 아마 사업하는 분들에게 교회는 거래 관계를 틀 수 있는 좋은 루트였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기독교 집안이었으니 가실 이유가 충분했다.


사춘기가 한창인 내게 교회는 한국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긴 했지만, 이들에게 그다지 친근함이나 알아갈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었던 게 사실이다. 왜냐면, 한국 아이들도 그 부모들도 싱가포르 또는 동남아에서 평생을 살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현지 문화를 제대로 알려하지 않았고 되려 현지인을 인종 차별하는 언행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기독교 지도자?, 전도사 목사란 사람들은 매우 권위적이었고, 딱히 뛰어난 사람들 같지 않다는 느낌을 준 게, 성경이나 종교 관련 질문을 하면 항상 회피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순수한 호기심과 이해를 갈망하며 용기를 내 질문을 했건만, 오히려 나를 꾸중하거나 면박을 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교회에선 매해 큰 예산을 들여 송년회 및 성탄절 행사를 했는데, 한국 유명 연출가를 초대해 연극을 준비하고 한인 전체를 초대하는 무대를 세웠다. 이때 처음 접한 연극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내 동생은 훗날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는 무대 전체를 만들고 통솔하는 일이 매력적이어서 무대 매니저로 자진해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올리는 실수 투성이 아마추어 연극이었지만 관객이 재미나게 봐주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고 스토리텔링에 대해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교회에 흥미를 잃었고 방황도 했다. 종교에 대해 고민을 하며 현지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 장소를 찾아 가보고 책도 읽고 사람들도 만났다. 힌두교 Hinduism, 이슬람교 Islam, 도교 Taoism, 불교 Buddhism, 시크교 Sikhism,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직접 보고 알아가면서 공통점도 발견했고 다른 점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꽤 탐탁지 않아하시며 크게 꾸중도 하셨었다. 왜 그렇게 다양한 종교에 대해 방어적이고 차별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처음 실망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런 딸의 모습이 불안하고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지를까 봐 걱정하신 것 같다. 


거센 반항기에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셨던 부모님의 심정이 이제는 이해가 되지만, 그땐 왜 세상이 내게 솔직하지 못하고 위선적이며, 나를 틀 안에 가두려 하는지 분노하며, 혼자만의 답 모를 궁리에 빠져 온갖 상상을 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심각하고 진지한 고뇌를 바탕으로 나만의 철학이 생겨나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테니, 사춘기 청소년이 던지는 모든 질문들을 존중하고 진중히 답해주고 소중히 다뤄줘야 한다는 점이다. 


못된? 딸은 그렇게 커가는 덩치만큼 고뇌도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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