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 진희 Jul 16. 2020

나의 인생 돌아보기

싱가포르에 적응하기 - 15세에서 21세까지 (PART 3)

사춘기가 시작된 건 참 지겹게도 계속 올라오던 여드름, 신체 변화에 따른 거추장스러운? 옷 입기, 그리고 이성에 대한 관심의 시작일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관심 가졌던 남자아이들? 은 패턴이 있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누구나 자신의 결핍이나 부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자아에서 시작된 특정한 형태의 대상이 생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어린 나이에 주로 주변 인물들이 되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는데, 그 대상이 꽤 다양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서 사춘기를 맞았으니 어련하겠는가. 게다가, 현지 학교를 다니고, 말레이어와 영어를 구사하고, 미래에도 동남아에서 쭉 살아갈 거라 어림짐작하고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인도 계열, 중국계열, 말레이계열, 한국계열, (인종이란 단어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구분을 하려니 계열을 쓰게 된다, 쩝), 또래부터 어른까지, 학생부터 전도사까지 포함하는 이성에게 관심을 가졌었고, 대부분 어설픈 짝사랑이었기에 상처 받기 일쑤였다. 여기에, 매체에서 나오는 캐릭터들까지 포함하면, 홍콩, 미국, 유럽, 호주, 일본, 한국의 배우들도 있었다. 만나지 못할 대상들이니 그저 열렬한 팬으로서, 이들이 나온 영상을 두루 섭렵하는 건 물론이고, 방 안에 포스터와 신전? 까지 갖춘 꿈 많은 소녀 시절이 기억난다.


내 부모님은 내 성적 호기심이나 이성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하셨던 것 같다. 무슨 뜻이냐면, 절대 간섭하지 않으셨고, 쓸데없이 조언하지도 않으셨고, 금지시키거나 막으려 하지도 않으셨다. 물론 기본적인 룰은 있었다. 어디 가면 간다고, 외박하면 한다고 거처와 연락처를 전달하는 것. 아버지는 특히, 일부러 가족 모두와 목욕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큭. 아마도 신체 변화를 겪는 아이들이 어른의 형태를 직접 보고 어색해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이때 자연스럽게 설명과 주의사항 같은 것을 알려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면 자칫 민망하기 쉽지만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태권도장을 다니게 됐었는데, 아버지가 일부러 정신력을 다잡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도장에 보내신 것 같다. 학교 집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운동하고 땀 흘리는 것은 잡념을 버리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외국에서 오래 사는 아이들에게 은근히 덤으로 애국심? 까지 고무시키려 한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흐.


지금 와서 생각했을 때 지금의 나를 만든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는, 내 부모님이 이성에 눈을 뜨는 딸에게 결혼에 대해 강요나 편견이 담긴 주입식 지침?을 발언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결혼해라 마라, 언제 해야 된다, 적어도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 등의 언급 말이다. 되려 실컷 연애해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양하게 사귀어보라고 하셨다. 그래야 연애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그 덕에 나름 연애에 있어서는 꽤 다양한 경험과 괜찮은? 지혜를 갖추게 된 것 같다.


지루하고 고역스럽던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인생 돌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