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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Sep 02. 2020

나의 인생 돌아보기

싱가포르에 적응하기 - 15세에서 21세까지 (PART 4)

싱가포르 중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Stream계열'을 나누는 시험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 5년 안에 졸업하는 Normal Stream이 아닌, 4년 안에 졸업하고 칼리지나 폴리테크닉을 선택할 수 있는 'Express Stream속성 계열' 학생들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앞전에 설명했는데, 싱가포르는 영국 교육 시스템으로서 중고등학교가 합쳐져 있고, 4년 또는 5년의 공부 후, College 또는 Polytechnic으로 진학하는 구조다. 칼리지를 선택하면 주로 University로 입학해 공부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고, Polytechnic을 선택한 경우 직업 계열 전공에 따라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대학교가 많지 않고 수준이 매우 높아서 진입 장벽이 크다. 따라서, 싱가포르인 대부분이 영어가 자유롭게 되기 때문에 해외로 대학교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많고, 대학은 아예 고려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적성에 맞게 커리어를 골라 일을 일찍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고학년이 되면서 공부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단 미래에 어떤 일을 할지 파악하는 작업이 되었다. 싱가포르 친구들의 대부분은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하고 싶은 일도 벌써 조금씩 경험을 하고 있었다. 소위 헛된 꿈이라 하는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그런 경우라도 벌이가 될만한 방향으로 틀어서 선택을 하는 이성적인 아이들이었다. 그와 다르게 나는 참~~ 이상주의적이고 고집스럽게 예술적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릴 적부터 계속 그림을 그렸으니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돈 벌기, 커리어, 직업, 모두 낯설고 나와 상관없는 단어 같았다. 


그런데 조금씩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졸업 시험 직후 학교 선택을 해서 지원서를 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싱가포르에는 순수 미술 전공 대학교가 그리 많지 않았고, 이곳을 졸업하면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 수 있을지 의아해진 순간부터인 것 같다. 아버지도 내게, 지금까지 키워줬으니 대학 끝나면 알아서 살아라 말씀하셨고, 순간 매정하게 들렸지만, 나도 나이 먹도록 부모님께 손 벌리고 사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그때부터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하지? 


마음 같아선 계속 그림만 그리고 살고 싶었다. 제일 잘할 자신이 있었고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거리에서 그림 그려주고 돈 받아? 전시회 해서 그림 팔아? 그 과정은 어떻게 되지? 그림 그리기 가르쳐? 아직 그럴 수준이 아닌데~ 우짜지? 그러던 중 어느 날 부모님이 내게 제안을 하셨다; 디자인 어때? 그림 잘 그리면 이것도 잘하지 않을까?


그 말에 그건 또 뭐야? 하면서 대학을 뒤져보니 디자인과가 있었다. 그것도 딱 두어 군데. 참 싱가포르는 이때까지도 상업과 무역, 기술과 서비스업 등에 치중했고 예술을 등한시하는 사회였다. 지금은 보아하니 예술 분야 전공과 학과가 더 다양해진 거로 안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이 분야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아버지의 추천으로 인테리어 회사에서 알바도 하는 등 약간의 경험을 쌓았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예술적인 요소들을 사용하는 직업들이니 괜찮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 참, 이 시기에 인터넷 정보망은 넓지 않았다. 나로선 도서관 책을 뒤지거나 전문가를 찾아가 만나야 필요한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이에 맞는 직업을 고르는 것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해결 방법은 어느 쪽이 정보가 모자라는지 보고 조사 및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슨 말이냐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의 직업들이 뭐가 있는지 찾는 것도 다 정보를 모으는 일이기 때문에, 양쪽 다 꾸준히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정보가 모자라고, 어떤 사람은 나처럼 할 수 있는 분야의 직업들이 뭐가 있는지 정보가 모자라는 경우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아마 이제 후자는 여러분에겐 해당이 안되겠다 싶다. 엄청난 속도로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니까.)


물론, 어떤 경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돈이 되는 일이거나, 돈 되는 일로 만드는 이도 있지만, 후자는 사회 경험이나 지식, 자본 또는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선 힘든 이야기다. 자본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을 알아내고 그에 맞게 자신의 제품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이것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기란 힘들다. 지금은 유명해진 인생의 커리어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일본의 '이키가이'라는 개념을 이때 어린 나는 물론 부모님도 전혀 몰랐다. 여러분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결국 나는 디자인 전공 밖에 선택이 없겠구나 싶었고 내 모든 그림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지원서를 냈다. 디자인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어서 막막했는데, 다행히 면접까지 가게 되었고 통과했다. 


디자인과로 유명한 Temasek Polytechnic에 입학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 학비도 해결이 되었는데, 싱가포르는 외국인 학생이든 현지 학생이든 동일하게 장학금 제도가 있었고, 학비를 정부가 내주는 대신, 졸업 후 3년간 필수적으로 현지에서 정규직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아버지는 기뻐하셨고 내 입학을 축하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엉뚱하게 디자인과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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